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배웠는데…

인생 2회차, 나는 오늘을 삽니다.

by 나타샤

나는 암환자다.

그리고 이름을 바꿨다.


나는 35살이다. 1년째 살아남는 중이다.




의사선생님의 말대로 시술은 간단했다. 잠에서 깨어나니 끝나 있었다. 내 기억에 없는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 기억을 빼앗긴것 같은 느낌으로 깨어나 보호자도 없이 혼자 온 나는 나를 챙겨서 돌아와야 했다. 병원에서 안내하는 것들을 숙지하고, 다음 진료는 오늘 긁어낸 조직들을 검사해야 하므로 일주일 후에 잡아준다고 했다.


멍한 상태의 나에게는 그저 '블라블라블라~'라는 정도로만 들렸고, 확실한건 일주일 뒤에 오라는 것과 당분간은 지긋지긋한 생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 인지되었다. 마음 속으로 '드디어 피가 모자랄 걱정은 안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화장실 들락거릴 일이 줄어드니 마음도 편해지고 일도 더 열심히했다. 그런 일상을 깬 것은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한통이었다. 일주일 뒤로 예약되어 있던 진료 날짜보다 이틀이나 빨리 오라는 전화가 산부인과에서 걸려왔다. '보호자와 함께 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이상하다 왜그러지? 뭐 결과가 좀 빨리 나왔나?' 하며, 동생에게 부탁해서 함께 병원에 동행해달라고 했다. 전화가 걸려온 다음날, 오후 늦게 동생과 함께 방문한 병원 입구에서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환자 본인만 병원에 출입할 수 있다며 보호자는 입구컷을 당했다. '뭐지? 같이 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막상 따라온 동생은 "거봐 누나 혼자오지, 난 어차피 못들어가네~, 근처에 있을테니깐 진료보고 전화해~" 하며 동생은 쿨하게 병원입구를 떠났다.


나는 혼자 병원으로 올라갔고, '에이 혼자올껄...괜히 데리구 왔네' 하면서 산부인과 진료를 접수했다. 기존에 예약날짜보다 이틀이나 빨리 온데다, 산부인과는 올 때마다 어색한 곳이라 쭈뼛거리며 병원 안을 돌아다녔다. 이름이 불리고 안내받은 병원 3층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간호사 샘이 옆 진료실 간호사샘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내 순서 뒤에 있는 환자들이 다른 진료실로 변경되어갔다. 진료실 앞에 떠있는 환자명단이 자꾸 바뀌면서 모두의 이름이 다 지워지고 내이름만 남았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런날이 있다. 이상한데? 왜 오늘은 뭔가 나를 위해 준비된 날 같지? 라는 기분이 드는 날. 나에게는 그날이 딱 그랬다. 뭔가 이 병원에서 나를 위해 이 순간을 기다린 것 같은 날이었다.


진료실 안에 들어선 순간, 의사선생님의 첫마디는 "보호자는 같이 안왔어요? 같이 오라고 전화가 갔을텐데요?" 였다. 나는 "동생이랑 같이 왔는데, 입구에서 코로나 때문에 못들어온다고 해서 근처에 있을꺼에요~" 라는 답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금 전화해서 진료실로 바로 오라고 하세요." 라고 하시며 간호사에게 입구에서 막지 말고 들여보내라고 지시를 내리셨다.


순간 '아... 뭔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막둥아 선생님이...지금 오래...니가 오면 이야기 하신대..."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동생이름을 부르며 "빨리와........"를 말하는 순간 눈물이 터졌다. 나는 그 순간 알았던 것 같다.


내 진료 뒤에 대기 목록이 없어지던 것과 굳이 이틀이나 빨리 병원으로 부른 것과,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는 당부와... 조금 더 앞으로 일주일 전 왜 이제 왔냐는 선생님의 말씀과 지난 몇달간 이상했던 내 몸과 그 모든 것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런 생각들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던 순간 동생은 어느새 내 옆에 앉아있었다. 얼마나 빨리 달려왔는지 어디서부터 그렇게 달려왔는지 물어볼 새도 없이 동생이 잡은 손에는 평생 잡은 그손의 힘 중에 가장 꽉 잡은 손이었고 가장 침착한 모습이었다.


동생이 달려오고, 내가 눈물만 하염없이 뚝뚝 흘리는 그 적막을 선생님의 한마디가 갈랐다.

"암입니다."



"최대한 빨리 큰병원으로 가보세요."

출산과 임산부들을 위주로 돌아가는 산부인과에서 더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진료의뢰서 한장과 조직검사를 한 키트를 챙겨주는 것 외에 그들은 더이상 내게 어떤 것도 해줄 수 없었다.


순간 믿을 수 없었고,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아무생각도 들지 않고 눈물만 쏟아졌다. 동생은 그순간에 침착하게 의사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내가 어떤 치료들을 받아야 하는 것이며, 어느 병원을 가야하는지 등등을 물어보고, 나를 챙겼다. 병실안에서는 동생과 선생님의 이야기 소리와 내 울음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그시간이 지나고 진료실 밖으로 나온 나는 병원 로비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내가 암이라니. 그것도 자궁내막암이라는 난생처음들어보는 병명을 들은 나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고, 눈에서 눈물은 마르지 않고 흘렀다. 생존률과 수술 할 경우 임신을 경험 할 수 없으며, 향후 결과에 따라 항암과 방사선치료를 이어가야 할 수 있다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을 엄청나게 들었다.


사람이 살면서 생존률을 들을 일이, 그것도 병원진료실에서 자신의 생존률을 들을 일이 얼마나 될까? 다 모르겠고 뭐라고? 내가 암이라고 지금 나보고 한말이 맞아? 왜 나야? 이런 생각들로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도 못한채 한시간 정도는 넋이나가서 울기만 했던 것 같다. 동생이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뭔가를 듣고 사인하고 접수하고, 결제하는 동안 나는 펑펑울었다. 나를 제외하면, 다 임산부들인 그 병원 로비는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평생 가장 많은 눈물을 그날 그 병원 로비에서 다 흘렸다.



34살의 나에게 참 잔인한 초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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