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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기동 Sep 02. 2024

피난 휴가

보수기독교 혐오 세력의 무리가 온다고 하여


*갑작스러운 휴가(?)


원래 휴가 계획을 잡지 않고 있었으나 갑자기 일터에서 피난 휴가를 얻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일주일간 나의 일터에 출근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사연은 이러하다.


나는 현재 발달장애아동센터 Child Development Center》를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나의 사무실은 (필리핀에 소재한) DK 교육센터(이하 DK) 안에 있다. DK는 한국의 대안학교와 연계하여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외이동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참여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재정적 어려움이 직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기독교 H 대안학교(이하 기독교학교)가 이 학교의 프로그램에 참여를 타진하기 위해 학교 수뇌부가 방문하는 일정이 잡혔다. 이 문제로 DK 교장 선생님께서 면담을 요청해 왔다.


교장 선생님은 (나의 성정체성과 관련 있는) ‘매우 센시티브 한’ 문제라면서 이야기를 꺼내셨다. 기독교학교는 그동안 독일에서 해외 이동학습을 진행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 독일 프로그램을 완전히 끊었다고 한다. 이유인즉 《동성애》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정확한 촉발 요인은 모르나, 추정하건대 독일 학교의 교직원 가운데 동성애자가 있었거나, 학습 프로그램에서 친동성애적 내용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어 있고, 성적지향에 관대한 유럽의 국가이니 말이다.


기독교학교가 필리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연간 8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학생들이 꾸준히 참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교의 1년 재정이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셈이어서 DK 센터의 처지에서는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고객이요 이번에 꽉 잡아야 한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면서 필리핀 학교 교장 선생님은 나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손을 꼭 잡으면서 “선생님 저는 괜찮습니다. 이렇게 (상황의 설명과 의논) 말씀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주일 휴가를 다녀올게요.”라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되어 피난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교장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보수기독교 동성애 혐오 세력들이 성소수자에게 가하는 잔인한 폭력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주한 외국 동성애자 대사와 그 동성 배우자가 있고, 주한미군 레즈비언 장성 이야기도 들려주었더니 무척 놀라셨다. 지금이 도대체 어떤 세상인가? 혐오 세력만이 동성애를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아, 그래서 두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살아간다. 대형 교회가 그 학교의 재단이라는데 그 교회에도 그 학교에도 성소수자는 있을 터인데 그들에겐 보이지 않을 뿐.


*나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


성소수자의 삶의 전반에 차별과 혐오가 도사리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말이다. 그야말로 성소수자는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야 한다.


나는 《나의 고통》을 말해주었다. “나는 (동성결혼 법제화가 되지 않아)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워요. 나와 남편은 결혼하였고, 입양하여 슬하에 세 살 난 딸을 키우고 있어요. 그러나 한국과 필리핀 양국은 나의 남편이 남편이 아니고, 나의 딸이 딸이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나의 모국과 지금 살고 있는 남편의 국가에 묻고 싶다. 그럼 나는, 남편은 그리고 우리 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정답은 우리 가족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남편이고 딸 그리고 가족이 팩트이다. 


*피난 휴가는 나를 유령 인간으로 만들었다.


사실 나는 이 학교에 고용된 노동자로 일하고 있지 않다. 사무실만 사용하고 있고, 독립적인 일을 한다. 그런데 내가 만약 이 학교에 고용된 노동자였다면 생계를 위해서는 나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감춰야만 했을 것이다.


기독교학교 사람들이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내가 그들을 만난다면 나는 이성애자인 척 거짓을 연기해야 한다. 남편은 결혼 후 이혼하고 혼자 싱글대디로 딸내미를 키우는 친한 친구로 변장시켜야 한다. 그야말로 가짜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 셈이다. 이런 것보다 더 웃기는 짬뽕은 없다. 어디 이뿐인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 딸내미가 갑자기 나를 ‘엄마’라고 부르면 뭐라고 둘러댈 것인가?


그렇다, 차별과 혐오는 이렇게 한 개인이 자신을 부정하고, 가정이든 직장이든 아니면 종교 단체이든 간에 퀴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꼭꼭 숨어 살게 만드는 어둠의 텐트(벽장)이다. 《내가 바로 나야》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퀴어는 벽장에서 나올 수 있다.


이렇게 피난처에 머무는 동안 나는 마침내 글쓰기를 작심하고 《퀴어노트》의 서막을 써 내려갔다.


#퀴어노동, #평등한 일터, #기독교 대안학교, #피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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