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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기동 Oct 22. 2024

꼬까옷 입고 나들이 가요

소풍 이야기

삐약이가 태어난 지 이제 1년 5개월이 되었답니다. 녀석이 조금 컸다고 이제 물건을 만지기 전에 엄마, 아빠의 눈치를 보면서 만져도 되는지 안되는지 간 보기도(?) 합니다. 어제는 미역국을 끓이면서 식탁에 액젓을 올려놓고 잠시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에 《작은 사달 났습니다. 


그 짧은 시간, 남편이 혼비백산하면서 저에게 액젓병을 가져왔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제가 지켜보지 못한 사이 그 짜디짠 액젓을 한 모금 원샷하고는 아빠에게 앵하고 달려간 것입니다. 우리는 급히 물을 좀 먹여야 했습니다. 액젓이라서 다행이지 만약 맹독성 화학약품이라고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합니다. 아기는 아직 사물에 대한 분별력이 없지요. 그래서 미리미리 위험을 예측하고 물건을 배치해야만 합니다. 남편 왈, 얼마 전에 사기그릇을 한 개 와장창 깨먹으셨다네요 (그거 우리 큰누나에게 선물 받은 한국산인데).


1년 4개월 때와 비교해 보면, 삐약이는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식탁의자에 앉고 싶을 때, 닫힌 방의 문 안으로 들어오고 싶을 때 말은 아직 못 하지만 친절한 음성으로 어린양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갖고 싶을 때 손짓으로 가리키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이거 ‘해주세요’하는 목소리의 톤은 아주 상냥하기 그지없답니다.


또한 응석부리기도 많이 늘었습니다. 아기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방바닥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눈물 흘리지 않고 우는 척을 하면 엄마, 아빠가 들어준다는 것을 알고 눈치를 보면서 삐약삐약 웁니다. 이런 발달로 인해, 저는 ‘만지면 아야 해’라고 설명을 하지만 이 녀석 안하무인이지요. 그러나 저는 대부분의 사건에서 ‘앙돼요’라는 말로 먼저 제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육아는 그야말로 ‘앙돼요’와의 전쟁입니다.


*꼬까옷 입고 나들이 가기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차로 15분 정도 가면 두마게티라는 커다란 시내가 나옵니다. 두마게티는 타 지역보다는 치안이 안전하는 평가를 받습니다. 


두마게티에는 여러 대학교가 있어 교육도시 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두마게티는 바다를 끼고 있고 주위에 조그만 섬들이 있어서 해양스포츠와 여행을 하기에도 좋은 도시입니다.


인보가 점차 자라나면서부터 아기를 데리고 소풍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두마게티 해변 공원에 자주 소풍을 갑니다. 소풍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맛있는 도시락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먹을 점심과 아기의 간식과 과자 그리고 분유도 챙겨가서 함께 먹습니다. 


이 해변 공원에 가면, 아기는 신이 납니다. 잔디가 깔려 있어서 넘어져도 다치지 않아 안전하지요(그렇지만 그림자 수비로 마크를 해야 해요). 삐약이는 여기저기를 마구 뛰어다닙니다. 그러다 판매하는 어린이 풍선을 보면 손가락으로 ‘어 어’하고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삐약이는 사달라고 조르지는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다행이지요.


공원에서 아기는 엄마 아빠 손을 나란히 잡고 걷기도 합니다. 찰스 아빠는 핸드폰으로 아기 사진 찍는 것을 매우 좋아라 합니다. 찰스 아빠는 아기의 요모조모를 여러 번 사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찰스 아빠는 결코 사진을 저장하고 인화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저의 작은 소임입니다.


우리 가족이 자주 소풍 가는 곳 가운데 한 곳은 바꽁에 있는 해변입니다. 바꽁은 읍 정도의 작은 도시인데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아주 가까운 곳이어서 아기와 이동하기에도 딱 좋습니다. 바꽁 해변은 특이하게도 아주 까맣고 부드러운 모래로 되어 있어 맨발로 걷기에도 아주 편안하고 시원합니다. 

이 해변에서 삐약이는 아기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닷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부축으로 물 위에서 둥둥 뜨기도 하고, 첨벙첨벙 손으로 두드리면서 신나게 놀지요. 


삐약이는 정말 물을 좋아합니다. 목욕할 때도 욕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양손으로 첨벙첨벙 물을 두드립니다.


예전에 이웃 아이의 생일을 초대받아 간 곳에 작은 실내 수영장이 있는 이벤트홀이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인보는 물속에서 노는 것을 아주 즐거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바꽁에서도 역시 도시락을 빼놓을 수는 없지요. 야외에서 먹는 밥과 음식은 정말 맛이 있습니다. 필리핀의 바나나는 정말 다양합니다. 한국에서 흔히 생으로 먹는 바나나 외에도 쪄서 멸치젓을 찍어먹는 바나나도 백미입니다. 


두마게티 해변과 비교해 보면, 바꽁 해변은 탁 트인 수평선 위로 푸른 하늘과 구름이 정말 장관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푸를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런 해변을 거닐면서 이런 풍경을 바라보고 사진에도 담습니다.


소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바꽁에 살고 있는 남편의 친척집을 방문합니다. 이곳은 찰스의 사촌 누나와 조카 내외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준비해 간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소풍은 설렘 이자 우리의 마음을 보다 넉넉하게 만들어 줍니다. 특히 소풍을 가서 아기가 방긋방긋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엄마 아빠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랑의 묘약’입니다. 


가끔 저는 밤에 잠든 녀석을 바라보면서 ‘내가 언제까지 우리 아가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 왜냐하면, 남들은 손주를 볼 나이에 늦둥이 딸내미를 보았으니 말이죠. 그래서 저희의 바람이 있다면 100세까지 무병장수 하면서 아기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내미를 삼신할머니와 하느님이 보내주셨으니, 우리 가족이 감당할 수 없는 역경은 피하게 해 주시고, 가난하지만 사랑과 친절이 부자인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도록 복을 내려주시길 두 손 모아 간절히 빌곤 합니다.  


행성인 회원 여러분, 삐약이와 함께 하는 소풍 이야기 즐거우셨는지요? 여러분께서도 이번 가을에 소중한 사람들과 소풍을 즐기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제 환절기를 맞이하여 여러분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늘 넉넉한 마음으로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다음 편에는 (이번 소풍 이야기의 시즌2 스토리로) 삐약이가 엄마 아빠 손잡고 동네 주위를 산보 다니는 마실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개봉박두여요. 고맙습니다.




* 글은 필자가 소속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 웹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게재일: 2022 10 28). 행성인 웹진 https://lgbtpride.tistory.com/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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