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다시 시작
- 서른 다섯, 중소에서 중견으로
최근 나는 몇 년만에 인생이 제대로 굴러가는 느낌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
'인생지마 새옹지마라더니. 제 3의 전성기라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비단 외적인 변화뿐만은 아니고, 내적으로도 이상을 조금 내려놓고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있다.
먼저, 인생에 몇 안 되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는데 중소에서 중견 기업으로의 이직에 성공했다는 것. 그동안 염원했던대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 것이 무엇보다 한시름 놓인다. 이전에는 앞이 까마득했으니까.
아이까지 둔 서른다섯이 1.5배가 넘는 연봉 인상에 경력을 어느정도 인정받으며 이름있는 곳에 취업했다는 것에 가까운 가족까지 많이들 놀라워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새삼 자랑스러운 아내이자 딸이 된 기분마저 느꼈다. 실은 이렇게 티 나는 성공을 꿈꿨던 적은 없고, 그저 경력을 새롭게 이어갈만한 직무를 찾았을 뿐이었다. 생소한 기업의 한 자리에 지원했는데, 알고보니 잘 나가는 회사였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막상 상승세가 엄청난 기업에 오니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껴 '역시 큰 물이 좋구나'하며 즐기고 있다. 이를테면, 사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사내 카페테리아에 중식 및 석식 지원 등 좋은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물론 모든 게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고,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이미 단단해질대로 단단해진 상태인 내겐 쉽게 넘길 장애물로 여겨졌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지원하고 들어오기까지는 2~3개월이나 걸렸다. 서류 지원, 1차 면접, 2차 면접(PT면접)까지 울렁거리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실은 중간에 지원 직무가 바뀌는 사정도 있었다. 처음 지원했던 포지션에는 1차 면접 후 떨어졌고, 나를 좋게 본 인사담당자가 다른 포지션을 추천해준 것이다. 될 사람은 된다고 그 이후로는 꽤 자신있게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현재는 4개월째 즐거운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에 드는 생각은 '다시 시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이야기를 듣는 요즘은 결혼 전 한창 바쁘게 살던 때의 충만감이 느껴진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사회에 나오기까지 불과 3년간은 사회에서 외면받고, 마치 인생이 끝난 것만 같았다. 나이는 먹을대로 먹어서 새롭게 시작하기 어려워보이고, 그저 아이 엄마로 내 인생 마침표를 찍는구나 싶었다.
그 몇년은 늘 불만이 가득했다.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었는데 영 바꿔입을 수가 없었다. 변화를 위해 노력하기까지는 바닥을 몇 번이나 쳐야했다. 문제를 발견하고, 의지를 발휘하기까지 말이다. 어쩌면 시련 속에 강해진 지도 모른다. 나를 힘들게 했던 직전의 회사를 다니면서 모든 것을 감내하자는 각오로 적극적으로 이직 준비를 했다. 몇년간의 침체되고 불만족스러운 루저 버전의 스스로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무엇이든 돌파할 준비를 하고나니 그동안 살아왔던 길을 포장할 여유가 생겼다. 높은 목표를 바라보고 위축되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강점을 진심으로 고민하며 이력서를 써나갔다. 다른 선택은 없고, 오직 될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하니 어느새 생각했던 바를 이루었다.
뭐, 앞으로도 이렇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면 되겠지 하는 마음이다. 지나치게 들뜨거나 위축되지 말고 현재 위치에서 작은 목표를 하나둘 성공시키는 것. 지금 그것이 유일한 목표이자 계획이다.
가끔 스스로가 한없이 불만족스러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결코 낙담하거나 비교하지 말고, 조금씩 고쳐나가다 보면 또 이렇게 모든 게 좋게 느껴지는 날도 오는 것 같다. 어쨌든, 이제야 내 인생에 '다시 시작'이라는 버튼이 생겼다. 제 2의 기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