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보신탕, 도토리 묵, 탕수육, 그리고 콩 사랑

by Baumee

해마다 여름이면, 아니 겨울에도 우리 가족은 개고기를 사 와 보신탕을 해 먹었다. 보신탕은 그 맛이 진하고 깊은데다 우리 가족이 더운 여름을 탈 없이 거뜬히 나게 해 주었는데, 엄마의 보신탕은 다른 어느 보신탕보다 맛이 일품이었다. 먼저 개고기를 사 오면 엄마는 커다란 솥에 물을 받아 고기를 잘 씻어 가스 불에 장시간 푹푹 끓이셨다. 고기가 익는 구수한 냄새는 온 집안을 진동했고 나는 그 냄새를 따라 부엌에 몇 번이나 드나들곤 했다. 어릴 적 보신탕을 먹는 날에는 얼마나 설레이고 좋았는지 모른다. 그날이 나에겐 잔칫날이었다.


어느 사이 개고기가 다 익으면 고기를 건져내어 식히고 우러난 육수에 간과 양념을 하여 맛을 더하신다. 그리고 고기는 잘게 찢어 따로 용기에 담아놨다가 후에 밥을 먹을 때 꺼내어 국물을 담기 전 식구들의 각 뚝배기에 각각 고기를 배치했다. 유난히 고기를 좋아했던 나에게는 엄마는 고기를 인심 좋은 큰 손으로 더 담아 주셨다. 아니 엄마가 고기를 담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이 담나 거의 레이저 수준으로 얼마나 쏘아보았는지 모른다. 각 뚝배기에 고기가 담아지면 거기에 맛있게 간이 되어진 깊고 진한 육수를 시원하게 부으셨다. 그 뚝배기들이 상에 놓여지는 순간 그리고 첫 술을 뜨는 순간부터 그 뚝배기의 바닥이 드러나 다 비워질 때까지 우리는 그게 어떻게 뱃속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없어진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입안엔 구수하고 진한 향이 흐른다. 부추와 파, 소금과 고춧가루, 그리고 후추로 각자의 입맛에 맞게 2차 간을 맞춘 뒤 먹는데 나는 자주 짜게 먹는다며 엄마, 할머니의 걱정 섞인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간간하고 진한 맛이 좋은 것을 어떡하랴. 식사를 마치면 우리 가족들은 각자 비운 뚝배기들을 뿌듯한 듯이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엄마의 단백질 가득한 그 보신탕은 그렇게 철마다 우리 가족의 든든한 보양식이 되어주었다.


한 번은 막내 고모의 결혼 상대가 집에 인사를 오셨다. 그래서 엄마는 우리 집 최고의 요리인 보신탕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셨다. 집에 오신 그 분은 매우 활달하고 선량하며 유머가 있는 분이셨다. 온 가족의 환대를 받고 인사를 마친 후 곧 식사 자리에 초대되었는데 글쎄 상에 귀하게 놓여진 뚝배기를 보고 손사래를 치며 못 드시겠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냄새를 맡기도 어려우신 듯 자리를 피하셨다. 알고 보니 보신탕 알레르기가 있었던 것이다. 생각을 해서 최고의 환대로 준비했던 저 맛있는 보신탕인데 못드신다니 나는 참 예민한 사람도 다있네, 이걸 못먹다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어떻게 하나 하고 있는데 엄마는 재빨리 다른 음식을 준비해 다 같이 식사를 할 수 있게 하셨다. 나는 보신탕을 가족 모두가 즐겨먹고 철마다 너무도 즐거움과 영양이 되었던 음식이기에 이것을 못 먹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매우 충격이었다. 훗날 그분은 고모부가 되셔서 그 날 엄마가 정성껏 준비해주셨던 보신탕을 못드신 것에 대해 두고두고 미안해하셨다.


대학에 들어가 대부분 서울에서 지내고 방학이면 잠깐씩 지방의 집에 내려와 있었는데 그 때도 오랜만에 와서 엄마에게 넌지시 주문한 음식이 보신탕이었다. 엄마는 그 때 집을 떠나 객지에서 고생하는 딸을 위해 읍내의 한 보신탕 집에서 보신탕을 1인분 사와 다른 가족들 몰래 오직 나를 위해서만 특별히 데워주시곤 하셨다. 밥상 앞에 나를 앉혀두고 등을 돌리고 보신탕을 데우시면서 ‘휴우~’ 한숨을 쉬셨다. 내가 안쓰러우셨던지 남몰래 한숨을 쉬시는 것을 그 때 나는 보았고 기억하고 있다. 객지에 딸을 보내놓고 매 끼니 손수 챙겨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몸소 딸의 이곳저곳을 보살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으리라. 나는 그날 그 보신탕을 엄마의 한숨을 마음 한켠에 담고 먹었다.

지금도 구수하고 진한 보신탕 냄새를 맡게 되노라면 엄마의 활기차고 정성스런 손길이 담긴 그것이 생각난다.






추석, 설과 같은 명절이면 엄마는 어디서 도토리를 한말씩 구해 오셔서는 그것을 가루내어 명절 전날 도토리묵을 손수 직접 만드시곤 하셨다. 크고 넓은 그릇에 도토리 가루가 담기고 나서 엄마의 손이 몇 번 왔다갔다하며 재료들이 넣어지면 어느새 저녁 찰랑찰랑하고 찰진 도토리 묵이 되어있었다. 나는 신기하고 신통해 묵이 형태를 잡아가고 있는 그릇 위의 덮여진 헝겊을 몇 번이나 들춰봤는지 모른다. 다음 날 아침이면 우리 가족은 밥상위에 사각으로 보기좋게 썰어 놓여진 찰기있고 시원한 도토리묵을 맛볼 수 있었다. 그것은 떫은 맛 없이 담백하고 고소했다. 말캉말캉하고 찰진 그것을 깨질세라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집어올려 엄마가 만든 부추와 고춧가루, 깨, 참기름 등이 어우러진 양념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그게 그렇게 오묘한 맛을 낼 수가 없었다.








탕수육 역시 명절이면 엄마가 하시는 최애 음식 중 하나였다. 탕수육을 처음 만들어볼 당시 엄마는 소스 만들기에 몇 번 실패를 하시더니 나중에는 결국 중국집 부럽지 않은 훌륭한 탕수육 소스를 만들어 부어내셨다. 예쁜 모양으로 썬 당근과 잘 익혀진 양파가 곁들여진 노랑 붉은 빛깔의 소스였다. 명절 전날 신문지를 여러 장 주방 바닥에 깔고 가스버너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둘러 앉아 잘 잘라진 돼지고기에 튀김옷을 묻혀 한 번, 그리고 기름을 뺀 후 두 번째 튀긴다. 적당히 온도가 올라 끓는 기름에 튀김옷이 묻은 돼지고기들이 들어가 바삭바삭하게 튀겨져 기름 위로 떠오르고 나면 고기들을 채로 건져낸다. 고기에 관한 한 참을성 없는 나와 동생은 일차 튀겨 기름을 빼고 있는 그 고기를 하나 둘씩 집어먹곤 했다. 우리 집은 부먹이다. 넓고 큰 접시에 탕수육 고기를 가득 담아 올린 후 엄마의 소스를 그 위에 시원하게 붓는다. 우리 가족은 그 소스를 잘 버무려 당근, 양파 고명과 함께 먹었는데 엄마는 고기가 떨어질세라 바로바로 접시를 채워주시곤 하셨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음식을 이야기 할 땐 엄마의 콩송편을 빠뜨릴 수가 없다. 추석 때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송편이다. 여기에는 팥을 비롯해 꿀깨, 그리고 콩이 안꼬로 들어갔다. 나와 동생은 팥과 꿀깨를 좋아하고, 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송편을 만들고 있으면 엄마는 꼭 잘 씻어 불려진 콩을 한 그릇 가지고 오셨다. “이것도 넣어.” 우리는 아무말없이 콩을 넣어 송편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는 팥이 들어간 송편을 고르려고 눈을 예리하게 뜨고 송편을 유심히 살핀다. 콩은 사실 엄마가 좋아하셨다. 엄마의 콩사랑은 밥을 지을 때도 나타났는데 흰 쌀에 꼭 보리와 검은 서리태를 한 줌씩 넣곤 하셨다. 잡곡의 좋은 점을 아셨던 엄마는 매번 콩이 포함된 여러 잡곡을 넣고 밥을 하셔서 우리는 매끼 울긋불긋 까슬까슬한 잡곡밥을 먹곤 했다. 나는 아무것도 섞지 않은 흰밥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친구들의 흰 쌀밥 도시락이 부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가족의 건강을 생각한 엄마의 고집은 일 년 365일 꼭 콩이 들어간 다양한 색깔이 섞인 잡곡밥을 먹게 하였다. 건강에 좋다하여 잡곡을 일부러 찾는 요즘이야 어디서나 잡곡밥을 흔히 볼 수 있고 각 가정에서도 잡곡밥이 일반화가 되었지만 약 20~30년 전 당시에는 집안이 조금만 넉넉하면 다들 흰쌀밥만 찾곤하던 때였다. 가끔 엄마보고 흰쌀밥 좀 해달라고 하면, “안돼. 흰 밥이 뭐가 좋아.” 하고 단호히 거절하셨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여러 가지 안꼬의 송편을 먹다 콩송편이 걸리면 “으이구!” 하고 미간을 좁히며 이미 베어 문 콩이 빼곡히 박힌 송편을 한 번씩 바라본다. 하지만 맛있다 생각하며 그냥 먹는다.


그때 그렇게 피하고 싶던 콩송편이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먹고 싶은지. 가슴 한쪽이 절절하게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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