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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May 24. 2024

그런 거 있잖아, 엄마의 손길

엄마는 손이 참 따뜻하고 보드라워.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을 공개합니다 (feat. 운이 좋아야 본다는 한라산 백록담 만수)


  "엄마는 왜 이렇게 손이 보드라워?"

   "왜 그런 거 있잖아. 엄마의 손길이라고 하는 거... 엄마는 손이 참 따뜻하고 보드라워."


   꿀이 뚝뚝 떨어지는 달고 달고 다디단 말. 제가 친정엄마에게 이렇게 달달한 말을 할 줄 아는 딸이면 좋겠지만, 이 말은 11살이 된 아들이 지난밤에 제 손을 만지면서 한 말입니다. '오다 주웠다' 같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은 감동이 더 큰 법이지요. 아들의 말에 나는 왜 엄마에게 단 한 번도 이런 말을 못 했을까 후회가 듭니다. 자꾸만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로 말해볼까 문자를 보내볼까 하다가 ‘에이, 부끄럽게 뭣하러’라며 이내 생각을 접고 말았네요. 인생의 부피만큼 주름이 깊어진 엄마의 손을 만지며 이 말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여튼 아들의 말은 어쩜 이렇게 온온한지, 무뚝뚝한 딸이라 아이의 다정한 말에 잠시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어릴 적 엄마의 손은 늘 바빴습니다. 집에서는 삼시 세끼의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하시느라, 물걸레로 집안 곳곳을 청소하시느라 물기가 있었지요. 어쩌다 손이 마를 틈이 생기면 손뜨개를 하거나 밀린 장부를 정리하시느라 엄마는 분주했습니다. 엄마의 손이 바쁘지 않았던 때가 도대체 언제일까 싶어 더 생각해 보아도 자기 전까지 과일을 깎아 우리 삼 남매의 입에 넣어주던 모습이 떠오를 뿐이네요. 정말이지 엄마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바지런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지요. 너무나 평범해서 흔한 일상이 될 뻔한 엄마와 손을 잡은 기억이 저에게는 특별한 느낌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쯤으로 기억해요. 엄마와 함께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며 저를 지키기 위해 잡아준 엄마 손의 감촉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또 배탈이 났을 때 아픈 배를 문질러 주며 저를 돌봐준 거친 감촉과 피부가 느끼는 감각과 대비되는 따뜻한 온도도 잊지 않았고요. 제 엄마의 손은 거칠지만 따뜻합니다.


  거칠고 따뜻한 손을 떠올리니 생각이 나는 사람이 또 있네요. 우리 가족 중에서는 엄마의 손만 거친 게 아니었더라고요. 바로 광덕리에 살았던 할머니의 손입니다. 할머니는 우리 가족이 시골집에 가는 날이면 도착 시간보다 더 이른 때부터 아궁이에 불을 지펴놓고 기다렸습니다. 아궁이 앞에 앉아 불장난을 좋아했던 어린 손녀딸 옆에서 나뭇가지를 꺾어 계속 불을 지피는 할머니의 손을 기억합니다. 아궁이 속 뜨거운 불이 할머니의 손을 뜨겁게 달구었지요. 게다가 밭농사를 하셨던 할머니는 뜨거운 태양볕에 그을려 엄마의 손보다 검고 거칠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우리 집안 여자들의 손은 누구보다 다정한 온도를 지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손안에 담고 있는 마음이 너무나 곱고 고와서 거칠고 단단한 피부로 지켜야 하는가 봅니다. 그 내력을 이어받아 제 손도 사계절 내내 무척 건조한가 봅니다. 핸드크림을 듬뿍 말라도 대번 피부에 흡수되어 어떤 날에는 손을 비비면 쓱 소리가 나고 정전기에 놀랄 일도 많지만 조금 불편해도 할머니와 엄마의 '거친 손'의 계보를 잇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호랑나비 애벌레를 쓰다듬는데 손가락만 보입니다. 핸드크림 plz.

  

  하루에도 몇 번씩 거친 손과 마주하는 계절에 아들이 건넨 다정한 말은 피부 사이사이로 촉촉하게 스며듭니다. 엄마와 할머니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의 온도를 다시 기억하게 만들고, 그 온도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다른 낱말로는 그 감촉과 전해지는 온기를 표현할 수 없지요. 아이가 제게 건넨 말로 제가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을 보드랍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듬뿍 주셨고 그 사랑을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이 되었는데, 왜 아이처럼 다디단 사랑을 돌려드리지 못했을까요? 아궁이 불을 지피던 할머니는 몇 해 전에 하늘나라에 집을 지으셨으니 엄마에게라도 손자의 말을 빌려 고백을 해보아야겠습니다. 

  이런 고백이라면 엄마도 낯설어 부끄러워하면서 속으로는 두고두고 좋아하실 것 같네요.




+ 사진을 찾다 보니 따뜻한 온도를 지닌 손 사진을 찾았어요. 셀프 미담 좀 풀어 볼게요^^

  어느 날 식당에 갔다가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정신을 잃은 아기 동박새 두 마리를 발견했어요.

  물을 먹이고 그늘에서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가까운 나무로 날아갔답니다.

  그동안 참새, 박새, 까마귀, 직박구리는 살려보았지만 평소에 예쁘다고 생각했던 동박새를 도운 것은 처음이었어요. 마침 이 글에 올린 사진을 찾다 우연히 보아서 셀프 칭찬과 함께 풀어봅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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