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파편; 우리는 누군가의 기억의 일부이다.
<사랑하는 딸에게.
아코, 미안하다. 너무 늦게 널 찾아서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네 앞에 나타나는 것도 힘들었단다. 너는 내가 기억하는 여섯 살 꼬마가 아니고 낯설어진 어엿한 성인이더구나.
아코가 여섯 살 때, 쥰이 열세 살 때 회사에 부도가 나 잘리고. 집값을 갚지 못해 쫓겨나 친척 집에 얹혀살던 시기에 나는 가족들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어. 얹혀살며 식료품조차 빚져야 하는 생활고. 살아보자고 마음먹은 게 아니라 그만 죽자고 마음먹었어. 그렇게 못난 사람이었단다. 나는 집을 나갔고 정말로 자살을 시도했단다. 기차가 달려오는 철로에 뛰어들었지. 하지만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완전히 뛰어드는 데 실패한 건지 발목만 잘리고 살아남았단다. 병원에 실려 가 큰 수술을 받고 발목 접합에 실패해 결국 다리를 잃었어. 병원에서는 가족이 있는지 물었지만 없다고 했어. 무능해서 정리해고 당하고, 죽겠다고 뛰쳐나가 발목 한 짝을 잃은 채 돌아온 가장이라니 없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내 몸의 일부를 잃고 나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해보지 않은 고된 일들을 마다하지 않으며 열심히 살았어. 의족을 끼울 만한 돈도 벌었고 제법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었지. 그렇게 되는데 15년이 걸렸어. 아코가 스무 살이 넘었을 때 비로소 말이다. 그러나 가족을 찾을 용기를 얻는 데는 다시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
다시 찾은 엄마는 이미 암 투병 중이고…. 죽을 날을 받아놓은 상태에 쥰은 떠났던 나를 원망했었고 이제는 찾아온 나를 원망하였다. 나는 너 역시 나를 다시 보고 싶지 않을 거라고 여겼고 너를 만나 가슴이 벅찼지만, 아빠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 이렇게 볼품없이 늙고 한순간의 못난 결정으로 가족과 발목을 잃은 내가 너의 아빠라는 그 말을.
아코, 너는 기억나지 않겠지. 네가 3살이 채 안 됐을 때, 너는 친척 집에 가기 위해 엄마와 버스터미널에 갔다가 엉뚱한 버스를 탔단다. 조그만 아이였던 너는 버스 좌석 틈에 가려져 전혀 보이지를 않았어. 엄마는 울면서 나한테 애를 잃어버렸다고 전화하고 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한낱 회사원이었음에도 사장에게 보고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일을 내팽개치고 터미널로 달려가 너를 찾았지. 이 잡듯이 훑었지만 너를 찾을 수 없었던 나와 네 엄마는 애간장이 녹아내리고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어. 여기저기 전화하고, 너에 대한 전화가 오면 꼭 집으로, 회사로, 친구 집으로. 친척 집으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번호는 다 제시하며 꼭 알려달라고 말했지. 천만 다행히도, 아코를 2시간 거리의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보호 중이라는 연락을 받고 단숨에 차를 몰고 그곳까지 갔어. 너는 말이 늦어 엄마, 아빠만 말할 정도였어. 콧물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나를 발견하자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얼굴로 아빠라고 말하며 내 품에 뛰어들었지. 나도 너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단다.
네가 다섯 살 무렵 봄, 그러니까 내가 아직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 휴가철을 맞아 우리 네 가족은 놀이공원에 갔어. 다 같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다가 너는 바깥에서 축제용 피에로가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아빠! 나 삐에로 보고 올래!”라고 소리치곤 바람보다 빠르게 문밖으로 사라졌다. 잡을 새도 없었어. 허둥지둥 따라 나갔지만, 그 작은 아이가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인파 속으로 사라졌지. 나는 망연자실했고 화도 치밀어 올랐지. 2년 전의 터미널이 떠오르며 눈앞이 캄캄해졌어. 나는 엄마와 쥰에게 꼭 자리를 지키라고 당부하고 한낮 봄의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너를 찾아다녔어. 키가 작은 네가 보일 리가 없지. 설상가상으로 네가 보고 오겠다던 피에로도 없었어. 나는 1시간 정도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혹시 돌아왔는가, 싶어서 다시 그 레스토랑으로 갔어. 엄마와 오빠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너는 보이지 않았지.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인파들 틈에서 갑자기 네가 나왔어. “아빠, 삐에로는 없어졌어.” 시무룩하게 말하는 그 얼굴에서 빛이 나는 듯했다. 화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가슴이 감사함으로 가득 찼어. 네 손을 잡으며 난 결심했지. 두 번 다신 이 손을 놓지 않겠노라고.
그걸 끝까지 지켰어야 했는데.
내 나이 70이 넘도록 배우지 못한 것이 있다면 너에게 뭐라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지….
내 인생의 막바지에 너를 찾아 너에 대해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단다.
이것 하나만 기억해 주겠니? 나는 잊어도 말이다, 너는 누군가에게 없어져서는 안 될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나츠하는 눈물을 손으로 쓱 닦았다. 그다지 슬프지도 울고 싶지도 않았지만, 눈물이 터져 나왔고 한번 눈물이 쏟아지자 오열을 멈출 수 없었다. 호스티스 생활을 하며 아무리 개 같은 일이 있어도 단 한 번 울지 않았던 나츠하였다.
나츠하는 아빠가 삶에 대해 물을 때 좀 더 신중하게 자세하게 대답해 줄걸, 거짓말을 하지 말걸, 후회했다. 이를테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거짓말. 사실 가출하면서 중학교 졸업도 포기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말에 고생했다며 환하게 웃었던 노인. 아빠.
아빠의 마지막 질문이 생각났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꿈이 있는지.
하고 싶은 일과 꿈.
내가 그런 걸 가질 수가 있을까?
편지를 다시 한번 읽었다.
내 실종에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 같던 부모님. 설령 가장 진귀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잃어버려도 그렇게 울면서 이 잡듯이 터미널과 아는 장소를 뒤지진 않을 것이다(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
나츠하는 잊고 살았었다. 자신도 이렇게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
잘 못 걷고 말 못 하는 아기였어도 그 자체만으로 사랑받았다는 것. 그게 자신이라는 건 변하지 않은 사실이라는 것.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뭐였느냐는 질문에 나츠하는 ‘세계지리’라고 대답했다. 한반도 태어난 나라를 떠난 적이 없는 터라 자신이 속한 세계 외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남아있던 터였다.
나츠하는 이제 막 도착한 기차를 타고 세 시간을 달려 도쿄에 다다른 후, 바에 들러 바로 일을 그만두었다. 빚지던 호스티스였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다행히 나츠하에겐 가능한 일이 되었다. 경제 사정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것.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풍요롭진 않았지만 적지도 않았다. 나츠하는 한동안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잊고 지냈던 꿈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며칠 뒤 나츠하는 홀연히 짐을 챙겨 국제공항으로 떠났다. 본인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망설일 것이 없었다. 꿈을 찾아가자, 사랑을 찾아가자. 낯선 곳에서 역경이 찾아온다면 마주하자.
몇 시간 후 나츠하는 첫 번째 목적지로 향하는 비행기 좌석에 앉아 멀어지는 풍경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