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음이라는 이유
머릿속으로만 굴린 생각이라 근거는 없다. 그래도 괜히 써본다.
"괜히 기분이 나쁘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대개 이렇게 생각한다. 아, 저 사람은 지금 자기감정의 원인을 설명할 에너지가 없거나, 설명해 봤자 상대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구나.
"괜히"는 언어의 백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해명의 포기 선언이다.
누군가 "왜?"라고 물었을 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인과관계를 차근차근 풀어내는 것.
둘째, "괜히"라고 말하며 그 질문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후자를 택한다. 전자는 너무 길고, 후자는 충분히 짧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괜히"라는 말이 사실은 전혀 무의미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말은 "내 안에 이유가 있긴 한데, 그걸 당신에게 풀어놓을 만큼 우리 사이가 친밀하지 않거나, 내가 그럴 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일종의 정서적 거리 두기인 셈이다.
어쩌면 "괜히"는 현대인이 발명한 가장 효율적인 감정 표현법인지도 모른다. 복잡한 내면을 두 글자로 압축하고, 상대방에게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며, 동시에 자신의 감정이 정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지까지 남겨둔다. 이 모든 걸 단 두 음절로 해내는 단어가 또 있을까.
가끔 나는 "괜히"라는 말을 쓸 때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회피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설명이 귀찮은 건지, 아니면 사실 나 스스로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는 건지. 후자일 때가 많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자기감정의 이유를 모른 채 살아간다. 그리고 그걸 솔직히 인정하는 대신, "괜히"라는 만능 변명을 꺼내든다.
결국 이 말은 정직함과 불성실함의 경계 어딘가에 서 있다. 감정의 복잡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끝까지 들여다보지 않겠다는 선언. 일종의 타협이자,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
그러니까 다음에 누가 "괜히 그래"라고 말한다면, 그냥 넘어가주는 것도 괜찮다.
그 사람은 지금 자기만의 이유를 품은 채, 그걸 굳이 세상에 내놓지 않기로 결정한 것뿐이니까.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괜히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서 그러는 거다.
생각해 보니,
이 글도 괜히 썼다.
그런데 이상하게,
괜히 쓴 글들이 결국 제일 오래 남는다.
왜 그런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