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와의 불화는 오래되었다.
학창 시절, 독후감이라는 과제 앞에서 나는 늘 백지를 응시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머릿속에 남은 건 흐릿한 잔상뿐이었고, 그것을 언어로 옮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감상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것을 포획할 그물이 없었을 뿐.
그렇게 나는 글쓰기와 거리를 두며 살았다.
누군가는 말했다. 글은 재능의 영역이라고.
타고난 이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라고.
나는 그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나에게 문장이란 건 애초에 주어지지 않은 도구였으니까.
그러니 굳이 억지로 쥘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말로 전하지 못한 것들이 가슴 어딘가에 퇴적되기 시작했다. 누군가와의 대화가 끝난 뒤, '아, 그때 이렇게 말할 걸' 하는 후회가 밤을 잠식했다. 감정은 있는데 표현은 늘 빗나갔고, 내 안의 무언가는 점점 말없는 덩어리로 응고되어 갔다. 그것은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아닌 이름 붙일 수 없는 무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메모장을 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더 이상 머릿속에 쌓아둘 공간이 없었을 뿐. 처음엔 몇 개의 단어를 나열했다. '피곤함', '허무', '그리움'. 단어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화면에 박히는 순간 묘한 해방감이 찾아왔다. 마치 오래 숨죽였던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썼다.
여전히 문장은 서툴렀다. 비유는 어색했고, 흐름은 매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완성도가 아니었다. 내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나온다는 것, 그 자체가 의미였다.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기 위한 통로였다.
어떤 이는 글을 쓴다는 건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글쓰기는 차라리 지워가는 과정에 가깝다. 언어로 옮겨진 순간,
그 감정은 더 이상 내 안에 머물지 않는다.
문장이 된 슬픔은 조금 덜 슬프고, 문장이 된
그리움은 조금 덜 아프다.
필력이 없다는 건 이제 변명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누군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쓴다.
나는 그저, 내 안의 침묵에 이름을 붙이고 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제는 믿는다.
글쓰기는 결국 용기의 문제였다.
서툰 문장이라도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용기. 누군가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내 안의 언어를 꺼내보는 용기.
그 용기가 쌓여서, 오늘도 나는 문장 하나를 더 남긴다.
책을 읽지 못했던 사람이 글을 쓴다는 건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 가장 절실한 표현은 가장 서툰 사람에게서 나온다. 왜냐하면 그들은 알고 있으니까.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무거운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