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토세 공항에서 입국한 첫날부터 말썽이다. 2022년에 작성한 블로그 글만 믿고 사진과 루트를 외우며 도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도난 버스는커녕 1층으로 내려가는 길이 안 보여 당황스러웠다. 눈치 없이 환한 미소로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는 도라에몽을 애써 무시하며, 엔화를 출금하러 가는 길에 보았던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직행했다. 비행기에서 짬 내서 봤던 일본어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급한 대로 영어로 길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이 이해되지 않아 '네 말을 못 알아듣겠다 다시 말해줄래'라고 하니 직원은 아이패드를 꺼내 검지 손가락으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타자 치는 속도보다 말로 하는 게 더 빠르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10초가 1시간 같은 기다림이 끝나고 직원이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 보여줬다. 파파고로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거다. 번역기로 돌린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도난 버스는 예약제로만 운영합니다. 도난 버스 예약을 하려면 국내선으로 가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대신 제가 전화로 예약이 되는지 알아볼까요?"
예약제라니 분명 2년 전만 해도 직행 버스만 예약제로 운영한다고 했는데. 내가 본 블로그 글을 보여줬지만 일본인이 한글을 알 턱이 있나, 결국 가장 빨리 예약할 수 있는 편으로 예약해 달라고 말했다. 원래 타려고 했던 시간대는 1시 20분 차였는데 이미 만석인 관계로 2시간 뒤인 3시 20분 편을 타게 됐다. 버스 요금은 1950엔. 만 엔짜리로 출금한 상황이라 잔돈을 만들러 근처 로손 편의점으로 향했다.
도난버스 정류장은 2층에서 왼쪽 구석진 데로 쭉 가다보면 나온다. 처음엔 막다른 길처럼 보여서 찾기 어려웠다.
900엔과 50엔짜리를 만들어달라고 말하기엔 서툰 영어와 일본어로 설명할 자신이 없어 약간의 꼼수를 부렸다. 일단 점심으로 먹을 브로콜리 감자 베이컨 샐러드와 푸딩을 구매한 뒤 1000엔 하나를 100엔 10개로, 100엔 한 개를 10엔 10개로 만들어달라는 내용을 파파고로 돌려 점원에게 보여줬다. 점원도 처음 받는 요청이어선지 당황해하셨지만 몇 가지 영단어와 손짓으로 어렵사리 이해하시곤 엔화를 교환해 주셨다. 뒤에 기다리는 손님들 눈치를 보느라 식은땀이 난 건 덤.
편의점에서 처음 먹었던 푸딩
오랜 기다림 끝에 도난 버스를 타고 노보리베츠로 출발했다. 긴장이 풀렸는지 어느 순간 버스에서 꾸벅 졸고 말았다. 도중에 눈을 떠 옆 좌석을 바라보니 동그랗게 큰 눈을 가진 젊은 여성분도 피곤하셨는지 같이 꾸벅거리며 졸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 화면엔 RPG 게임이 보였다. 우리가 있는 좌석에 잠귀신이 숨어 들었나. 서로 졸 때는 또 졸다가 내가 깨면 그도 눈을 뜨고 자리를 고쳐 잡는 상황이 좀 웃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