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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Dec 23. 2024

눈의 도시, 삿포로로 가다 (2)

눈 내리는 밤풍경 속 온천물에 담그면

홋카이도는 이른 아침부터 밝아져 오전 7시만 되어도 밖이 환하다. 반면 오후 4시쯤엔 날이 어둑해져 주변엔 가로등 불빛으로 가득하다. 한국의 시간관념으로 일정을 짜다간 낭패를 보기 쉽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노보리베츠까지는 대략 1시간이 걸린다. 도난 버스 예약을 놓쳐 오후 늦게 출발하다 보니 노보리베츠 온센에 도착했을 무렵엔 이미 해가 진 상태였다. 원래 일정상 지옥계곡을 들러야 했지만 뭐 아무렴 어때. 이미 첫날부터 틀어진 것을. 지옥계곡은 다음날에 방문하기로 했다.

다이이치 타키모토칸 전경, 한밤중으로 보이지만 오후 4시였던 것..


노보리베츠 온센은 작은 온천 마을이다.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어 주변에는 호텔이 대부분이고 작은 상점과 음식점 두 세 곳 정도로 작다. 내가 머물 곳은 다이이치 타키모토칸. 다이이치 타키모토칸은 남관과 동관으로 나뉘어 있고 동관 쪽 지하에 노래방, 게임방 등 레저시절이 있고 2층에 뷔페가 있다. 나는 남관에 호실을 배정받았다. 오래된 호텔이라 낡은 느낌이 있다는 후기를 봐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카드키를 대고 문을 열자 깔끔하고 기대 이상으로 넓어 좋았다.

막 도착했을 당시 찍은 호텔 내부

 바로 오른편엔 화장실이 있고 안으로 들어오면 트윈 사이즈의 침대 두 개가 보인다. 탁자엔 환영의 인사말과 함께 만쥬 두 개가 놓여 있는데, 맛이 좋아 자리에서 모두 먹어버렸다.


다이이치에 머물면서 일본 특유의 세심함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환영 인사 카드에는 어떤 직원이 룸 청소를 담당하는지를 서명해 놓는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름을 걸 만큼 다이이치 호텔은 고객 서비스에 진심임을 나타내는 좋은 장치다. 또 하나는 옷을 제공하는 방식. 손님의 다양한 키를 고려해 객실 내에 대중소별로 하나씩 유카타를 구비해 놓았다. 프런트에서 받아가는 방식이었다면 사이즈를 묻고 옷을 찾는 번거로움이 있었을 텐데, 그런 문제를 간소화하고 편히 입을 수 있게 고려한 이들의 배려심이 돋보였다.

사이즈별로 서랍장에 놓여진 유카타

다이이치 호텔의 세심함은 여기가 끝은 아니다. 뷔페에 들어서면 직원이 빈 테이블로 안내한다. 테이블 위에는 카드가 올려져 있다. 좌석이 비어 있으면 '빈자리'가 위로 향해 있고, 손님이 앉으면 직원이 '이용중'으로 바꿔준다. 충분히 음식을 먹고 나면 카드를 뒤집어 '끝났음'이 위로 향하게 두면 끝이다. 직원 입장에선 어디에 좌석이 비었는지, 식사가 끝났는지 여부를 쉽게 알 수 있어 좋고, 손님 입장에선 누가 자리에 앉을까, 다 먹지 못한 음식을 치울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랄까. 이 또한 손님이 직원을 부르지 않아도 의사를 조용히 전달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용중 카드 뒷면이 끝났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카드를 뒤집기만 하면 된다.

식사를 끝난 후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오늘의 목적인 온천으로 걸음을 옮겼다. 홋카이도에 온천을 즐기러 왔다면, 일본의 온천 문화를 알고 가면 좋다. 첫째, 타월을 몸에 두르지 않기. 일본 애니나 만화엔 몸에 타월을 두르고 온천물을 담그는 묘사가 많아 착각하기 쉽다. 실제론 타월을 몸에 두르는 행위는 예절에 어긋난다. 처음엔 남에게 몸을 보이는 게 부끄러울 순 있지만 다들 가리는 것 없이 당당하게 지나가니 걱정 말고 편하게 있자. 아마도 전 연령대가 시청하는 애니에선 벌거벗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으니 (안 그럼 철컹철컹이다) 타월을 두른 캐릭터의 이미지는 어른들의 나름대로 고민해서 나온 자구책이지 않았을까.


온천에서 지켜야 할 두 번째 예절은 머리카락을 물에 닿지 않는 것이다. 온천물에 들어가기 전 몸을 깨끗이 씻은 후 머리카락이 물에 닿지 않도록 묶어 올리고 나서야 온천에 들어갈 수 있다. 이러한 예절은 모두가 온천물을 깨끗이 쓰기 위한 공동의 약속이다. 온천물엔 유황이 함유되어 있어 씻고 나면 피부가 반들반들 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온천물을 씻으면 효과가 없어지니 되도록 물로 씻지 않는 게 좋다. 모두가 온천을 깨끗이 쓰려는 노력 덕분에 안심하고 온천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대욕장 안은 한국의 대중목욕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목욕의자에 앉아 샤워기로 몸을 씻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보이며, 더 안쪽에는 사우나실이 있다. 왼편에 낮은 계단을 올라가면 온천탕이 보인다.  실내 온천탕은 수증기가 가득 차 안 그래도 저시력이라 안경 없이는 뿌옇게 보이는데 앞이 잘 분간하기도 어렵고, 온도가 높아서 탕에 오래 있기 힘들었다. 오히려 야외 온천탕이 좋았다. 마침 가느다란 눈발이 내리고 있어서 운치가 있었다. 머리는 시원한 채로 따끈한 물에 담그니 그제야 살만하다 싶더이다. 야외 온천탕에서 한참을 머물며 놀다 하루를 마무리했다.

저녁 뷔페에서 먹은 음식(좌)과 우유로 유명한 홋카이도의 푸딩과 우유. 편의점에서 먹은 푸딩보다 훨씬 맛있고 우유는 고소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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