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이른 체크아웃을 하고 지옥계곡으로 몸을 돌렸다. 다이이치 타키모토칸 바로 옆이 지옥계곡이어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겨울 내도록 내린 눈이 빙판길를 만들어 내려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앞서 있던 중국인 가족이 나란히 나무 지지대를 붙잡으며 천천히 한 발 내딛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나도 별 수는 없어 어기적거리며 조심히 내려갔다.
지옥계곡에 다다를수록 미용실 파마약 냄새가 강하게 진동했다. 지옥계곡에서 솟아난 온천물은 유황이 함유되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알고 보니 파마약에도 황이 포함되어 비슷하다고 느낀 듯하다. 지옥의 냄새가 적응될 즈음 전망대 건너편에 움직이는 형체를 발견했다. 세 마리 사슴 무리는 가파른 능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좀체 볼 수 없던 희귀한 관경이라 얼른 영상에 담았다.
먼 거리에서 줌인한 사슴 무리, 거리가 멀어서 화질이 떨어진 게 아쉽다.
지옥계곡과 더불어 함께 언급되는 장소로 오유누마가 있다. 노보리베츠에서도 지옥계곡에서 오유누마로 이어지는 코스에 표지판을 세워두었는데, 오유누마의 흥미로운 사실을 퀴즈 풀 듯 가는 길마다 표지판으로 안내하는 듯했다. 아쉽게도 내가 도착한 시기에 눈이 크게 내렸다 보니 위험하다고 여겨 길이 막힌 상태였다. 눈이 조금만 덜 내렸다면 노보리베츠 주민의 위트 있는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혹시나 해서 구글지도를 확인하니 큰길로 둘러서 가면 오유누마까지 들어갈 수 있을 법도 해서도보로 쭉 따라 걸었다. 주변엔 신식 호텔과 오래된 료칸이 한 곳에 나란히 있어 묘한 인상을 받았다. 한 호텔 앞에는 거대한 눈사람이 계단 위에 놓여 있었다. 조금 억울한 표정을 한 눈사람은 지나가는 관광객의 눈길을 붙잡아 포토존으로 변신한다.
관광객이 지나간 자리 조금 쓸슬해보이는 눈사람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오유누마로 가는 길목엔 족욕장이 있다. 뜨거운 온천물이 흘러내려 산 아랫목에 도달할 즈음 미지근하게 변해있는데 그 옆에 나무판자가 놓아 발을 담그도록 조성해 놓은 곳이다. 방한화를 신고 있어 발 대신 손을 담갔다.
오유누마 가는 길에 들른 족욕장
혹시 나가 역시나였던가. 이곳에서도 오유누마 가는 길은 통제되고 있었다. 잠시 몰래라도 다녀올까 싶었지만, 일말의 양심과 만일의 안전을 생각하며 조용히 돌아섰다. 왔던 길을 돌아가면서 뜻밖의 생물을 만났다. 지옥계곡에서 먼발치에서만 봤던 사슴이었다. 사슴 두 마리는 천연덕스럽게 마을에 내려와 풀을 씹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사슴에 가까이 다가가자 기척을 눈치채고 도망쳤다.
목적지였던 오유누마를 보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헛걸음이라고 보진 않는다. 지옥계곡만 보고 떠났다면 오유누마로 향하는 동안 보았던 료칸의 아름다운 모습들과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해 준 눈사람 그리고 사슴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