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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도시, 삿포로에 가다 (4)

스노우볼 같은 고요한 오타루 시에서

by 꽃비내린 Jan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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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열차를 타로 노보리베츠에서 삿포로로 가는 편은 지정석만 있다. 노보리베츠 역사 내 중년의 안내원이 있어, 표를 예매할 줄 몰라도 안내원에게 인원수만 알려주면 알아서 좋은 자리를 예매해 준다. JR 열차를 타는 곳은 지정석마다 달라서 안내판을 잘 확인해야 한다. 안내판에는 호차번호 아래 알파벳이 있다. 내가 2호차를 탄다면 E로 표시된 위치에 기다리면 된다.

안내판에는 기차가 들어왔다 정차하는 애니메이션이 있어 흥미로웠다

삿포로역에 도착하면서 두 번째 위기를 맞았다. 바로 키타카 카드 행방 찾기. JR 열차와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야 한다면 표를 사기보다 일본의 교통카드를 사는 것이 편하다. 홋카이도는 키타카 카드를 판매하는데 일본 전역에도 쓸 수 있으니 추천드린다. 다만 한국에서 교통카드를 구매하는 방법을 생각하면 낭패를 보기 쉽다. 처음에 키타카 카드 자판기가 따로 있는 줄 알고 안내원에게도 묻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코빼기도 안 보였다. 1시간이나 삿포로역에서 헤매고 나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승차권 발매기에 가니 발매기에 키타카 카드를 구매하는 옵션을 찾았다. 2천 엔을 투입하면 키타카 카드 발급은 끝!


숙소는 삿포로역 아래 오도리역 근처로 잡았기 때문에 지하도를 따라 걸어갔다. 삿포로는 눈이 많이 내리는 도시여서 지하도가 잘 발달되어 있다. 꼭 눈이 아니더라도 계획도시로 생겨난 만큼 격자 형태를 띠고 있어 횡당보도가 귀찮을 정도로 많다. 걸어서 돌아다닌다면 지상보다는 지하도를 이용하는 걸 추천한다.


숙소는 캡슐 호텔로 1층은 카페 겸 라운지로 활용하고 3층은 여성전용, 5층은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부엌과 빨래방 그리고 샤워실이 있다. 체크인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해 캐리어만 맡기고 이동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자리가 비어 있어 일찍 체크인을 마칠 수 있었다. 말이 캡슐이지 실상은 2층 침대가 여러 개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호텔이라 중요한 소지품은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 점이 아쉬웠다.

숙소에서 재정비한 후 다시 JR열차를 타고 미나미오타루역에 내려 오르골당을 향했다. 오타루시에 대한 첫인상은 스노볼이었다. 가득 쌓인 눈이 세상의 소음을 잠재워 고요한 . 눈을 밟을 때마다 나는 뽀드득한 소리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소리였다.

흐린 날씨가 그림 같은 분위기를 낸다.

 오르골 성당 방향으로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르타오 본점이다. 서양식 건축물이라 오타루의 신비로움을 더해주었다. 오타루의 시간은 저녁 6시에 멈춰진다. 키타카 카드를 만드느라 4시를 훌쩍 넘어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먼저 발걸음을 옮긴 곳은 오르골당 2호점. 오르골당 본점보다 오르골 종류도 적지만 꼭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바로 매 정각에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 최초로 도입된 자동연주 파이프 오르간

파이프 오르간은 건반이 없는 대신 가운데 원통형에 구멍이 난 종이를 감싼 후 연주자가 원통을 돌리는 방식으로 소리를 낸다. 오래된 만큼 소리가 중간중간 끊기긴 하지만 파이프에서 울리는 오르간 연주는 웅장했다.


오르골과 유리공예를 구경하고 기념품을 산 후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기타이치홀. 이 안의 모든 불빛은 오로지 등유로만 내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픈 시간에는 30분간 석유등을 켜는 모습도 볼 수 있다는데 수많은 등을 손수 밝혔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화려하게 장식한 샹들리에와 탁자의 불빛 모두 석유등으로 이뤄져 있었다.

오타루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보에 쌓인 눈이  가운데를 기준으로 왼편만 깔끔히 치워진 풍경을 발견한다. 언제 또 눈이 내려 도보를 뒤덮을지 모르는 오타루시의 주민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정도로 눈을 치워둔 것이다. 나는 그 미완의 영역을 지긋이 바라본다. 눈이 만든 어제의 환상을 하룻밤의 신기루 마냥 지우기 보다 한 움큼의 여유를 남긴 이들의 흔적을 기억한다.

눈발이 날리는 오타루의 밤, 점멸하는 신호등 마저도 한 폭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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