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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Bohemian Writer Feb 06. 2023

<꿈의 제인>

나도 나를 연민하기 버거워서

조금은, 사는 게 벅차다. 산다는 건 원래 누구에게나 꽤나 벅찬 일이지. 이런 시대와 세상에 삶이 벅차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러니 엄살은 그만 부려.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그런다고 삶의 짐이 경감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행복은 요원하고 불행은 가깝다. 불행하지 않음조차 손에 닿을 거리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세상이 아주 정성스럽고 정교하게 설계된 거대한 지랄 같다. 더 이상은 버티고 있기가 힘들다. 호흡의 무게가 느껴진다. 분명 가볍지 않은 호흡이다. 안쓰러이 부서진 나의 세상은 쉽게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무력감을 많이 느낀다. 뭘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 참 많은 것들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무언가에 집중하기도 힘들다.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 역시 자주 머릿속에 나타난다. 힘겹게 간신히 삶을 쥐고 있는 느낌이다. 언젠가 사람은 희망과 추억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낸다는 생각을 한 적 있었다. 하지만 붕괴된 희망 앞에서는 추억도 꽤나 힘이 없다. 아예 무너지지는 않아야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지, 이런 생각들로 삶을 아등바등 지탱하고자 한다. 그리 단단한 생각들은 아니다. 희망과 추억이라는 두 축도 견고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내 삶은 꽤 자주 휘청인다.

삶에 의미 같은 건 없다고 단정 지은 지 오래다.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그리고 어떻게든 호흡은 하고 있다는, 그 관성이야말로 내 삶을 그나마 굴러가게 하는 유일한 원동력이다.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를 '죽지 마'라는 세 글자로 바꾼 지 꽤 되었다. 어떤 노래 가사의 일부인데, 미약하게나마 힘이 되었던 구절이었다. 내게 있어 '죽지 마'라는 세 글자는 '놓아버리지 마'라는 말과 등가의 의미다. 모두를 포기하고 모든 걸 잃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죽지 마'라는 짧은 구절을 되뇌어 본다. 분명 강박적 당위에 가까운 말이고, 거기에 나는 삶에 무언가를 주입하거나 강제하려는 모든 강박들을 열렬히 증오하는 편이지만, 어쩔 때는 이런 것들이 나름의 도움이 된다. 물론 타인에게는 함부로 못 건넬 말이기도 한다. 스스로의 삶을 혐오하고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지나치게 고된 사람에게 '죽지 마'라는 말이 되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정도로는 괜찮은 듯하다. 깊이 절망하고 실망하더라도 모든 걸 놓아버리지는 말자. 버티고 견디자. 버티고 견딜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부러 호흡의 관성을 끊어내지는 말자. 그러니까, 죽지 말자.

오늘도 '죽지 마'라는 세 글자를 무심히 바라보다가 뜬금없이 '연민'이라는 단어가 문득 생각났다. 무언가를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이 연민이라고 한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로부터 나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소중히 하라는 말들은 판을 치듯 널린 세상인데, 그래서 그런 꼰대적이고 뻔한 언사들에 대한 지겨움과 반감이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들 정도인데, 자신을 '불쌍히' 여기라는 이야기는 조금 참신하게 다가왔던 기억이다.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는 그때 들었던 자기 연민의 효용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스스로가 명확히 불쌍하게 여겨질 만한 구석이 딱히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나라도 나를 연민해야겠지만, 역설적으로 나라서 나를 연민하는 일이 더욱 쉽지 않다. 지금 느끼는 이 불행이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건 아니다. 불행의 현실적인 이유들이 분명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들이 고쳐진다고 해서 나의 불행이 금방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과 낙관을 가지기도 힘들다. 그리 쉽게 나아질 수준의 불행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더욱 어렵다. 깊은 불행의 원인을 콕 집어낼 수 없고, 그러니 스스로를 연민하기가 더욱 지난해진다. 불행의 자격을 따지게 되고 나는 그것에 미달된다. 오히려 자괴감이 더 커진다. 누구나 겪는 일들에 내가 지나친 엄살을 부리는 건 아닐까. 나조차도 내 편이 아니다. 자연스레 외로움이 증폭된다. 슬픔과 외로움을 요즘 들어 특히 많이 느끼고 있는 건 아마도 이 때문일 테다.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도 삶의 법정에서 나를 위해 적극적으로 변호하거나 증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나를 찌를 수도 있다. 스스로가 나약해서, 부족해서, 미숙해서, 혹은 어리석어서 그런 불행의 감정들을 많이 느꼈다고. 그러니까 결국 모든 것은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나는 자기애가 높은 사람은 아니다. 자존감이 높았던 적도 지난 날들 동안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앞으로도 그런 날은 높은 확률로 찾아오지 않을 테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럽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다는 게, 그러니까 휘청거리고 절망하여도 끝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 견고한 믿음과 확신이 많이 부럽다. 힘든 일들은 삶을 예고 없이 태연한 얼굴로 침범한다. 누구나 살면서 다치고 상처를 입는다. 그렇게 다친 마음을 스스로가 가장 먼저 따스히 감싸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괴리가 조금은 무겁게 마음에 걸린다. 나마저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세상 모두가 내게 미움을 보내도 스스로만은 스스로를 연민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참 쉽지 않다. 분명 불행은 그치지 않을 텐데, 괴로운 일들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필연적으로 나를 찾아올 텐데, 그럴 때마다 내가 나를 안아줄 수 없어서 슬프다. 연습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닌 듯해서 더욱 안타깝다.

나는 나를 연민할 줄 모른다. 괜찮다는 말을 따스히 건네지도 못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안아줄 수 없기에, 어쩌면 인생이 아무리 지랄 맞아도 죽지는 말라는 말이 내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언어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꿈의 제인>의 대사처럼,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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