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50th Birthday!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by Rainsonata

어느덧 50세를 맞이한 스톰에게,


함께 18년을 지내고 나니, 어느새 오빠의 50번째 생일이 찾아왔네.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는 이유가 그쯤은 되어야 자기가 해나가야 할 일이 보이기 때문이래. 우리가 살면서 배우고 익힌 것들이 살아가는 동안 큰 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앎으로 인해 더 많은 혼돈의 시기를 거칠 수밖에 없는 것도 삶의 한 과정인 것 같아. 지금까지 오랜 시간 높고 낮은 인생의 산봉우리를 쉼 없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해 온 오빠에게, 오늘만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하늘과 푸르른 바다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선물해주고 싶은 날이야.


오빠는 어려서는 철부지 막내로,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는 제 앞가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듬직한 아들로, 대학생이 되어서는 민주화 운동을 통해 행동하는 양심을 실천하는 청년으로, 악몽의 기나긴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배낭 하나 들고 홀연히 미국으로 향한 용기 있는 젊은이였지. 그 후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터전을 일구어야 했던 오빠는, 언어적 문화적 경제적 한계에 매번 부딪혔을 테지만, 그동안 쌓아온 정신력으로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왔을 거라고 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


그리고 예쁜 아내를 얻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오빠 말대로 천사 같은 얼굴 뒤에 숨겨진 나의 엽기적인 성격은 제대로 살피지도 못한 채 선뜻 결혼했고, 그렇게 오빠의 30대 초반의 삶이 시작되었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마어마한 에너자이저 랄라가 태어나면서 오빠는 아빠라는 신비로운 세계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지.


나는 가장이라는 무게를 한 번도 짊어진 적이 없어서 오빠의 심정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지만, 오빠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오랜 번민과 희생의 시간을 보내왔는지, 현재로서는 이 지구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나 싶어. 오빠에게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을 거야. 하지만 절대 짧지 않았던 18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오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으며 오늘 50세를 맞이하는 순간까지 걸어왔다는 것을 알아. 때로는 오빠의 최선이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오빠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부끄럽지 않을 만큼 충실한 삶을 살아왔으니 떳떳할 거라고 믿어.


서로에게 가까워지고 친해질수록 초심을 잃고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지내게 된다는데, 그중 가장 소홀해지기 쉬운 대상이 배우자인 것 같아. 그래서 나도 오빠의 50세 생일을 맞이해서 나 자신의 부족함을 되돌아보고 이 점은 열심히 고쳐보자고 다짐했어. 어쩌면 나의 긍정적인 변화가 오빠에게는 가장 큰 생일 선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봐. 일상은 우리가 사랑하는 소소한 행복의 원천지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벗어나기 힘든 굴레가 되어 고통의 근원지가 되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가족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자랑스러워.


얼마 전부터 눈이 침침해져서 가구 조립 설명서의 내용조차 꼼꼼히 챙기지 못하는 오빠를 지켜보는 내 마음이 참 그렇더라. 애잔하고 애처롭고 안타깝고 속상하고 무엇보다 슬펐어. 나이를 먹는 것은 나도 오빠도 랄라도 피해 갈 수 없는 불변의 진리겠지만, 난 오빠가 되도록 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앞으로 펼쳐질 나날을 평온히 일구어 나가기를 바라거든. 또 삶의 의미와 자신의 행복을 찾아 인생의 여행을 계속하기를 응원하고 있어.


50년 전에 오빠는 몹시 신비로운 인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 것이고, 50년이 지난 지금 오빠는 조금은 쓸쓸하고 찬란한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 있어. 내가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인간이 정신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고독의 체험이 필요하대. 그리고 우리는 고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들었어. 난 오빠가 50을 맞이하면서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를 시작한 것에 감사하고, 오빠의 태어남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어. 그동안 고마웠어.


사랑해 스톰!


2018.11.24 (음력 10월 17일)

레인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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