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랄라에게,
우리 랄라가 어느새 스물세 살이 되었구나. 생일 축하해!
편지를 쓰려니, 얼마 전 주말여행을 다녀온 랄라가 기차역에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이야기하던 모습이 떠올라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구나. 주말 동안 묶었던 오두막집이 얼마나 아늑했는지, 가을 옷을 입은 숲에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아침에 내려앉은 안개가 얼마나 운치 있었는지, 그리고 두 팔 벌려 안아줄 수 있는 아름드리나무를 만나서 얼마나 기뻤는지를 들려주며 환하게 웃던 우리 랄라. 그런데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샤워하러 들어가면서 "엄마, 나 아직 더 할 얘기 있어요!" 하며 커튼 너머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더구나. 엄마는 욕실의 변기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웅크려 앉아, 랄라의 명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마치 단비를 맞는 들녘의 곡식처럼 그 모든 말을 귀와 마음으로 흠뻑 받아들였단다.
랄라야, 스물세 번째 생일을 맞은 오늘, 아가였을 때처럼 여전히 나무와 바람, 별과 달, 모닥불, 그리고 아늑한 공간을 사랑하는 네가 있음에 엄마는 그저 감사할 뿐이야. 랄라가 이렇게 건강하고 맑은 어른으로 자라기까지 자연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우리는 자연 속에서 머무는 시간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삶에서 비워내고 채워야 할 균형 감각을 되찾을 수 있단다.
걸음마를 시작하던 시절부터 랄라는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을 산책할 때면 유모차에서 내려 직접 걷기를 좋아했지. 특히 아빠의 새끼손가락을 꼭 잡고 아기 오리처럼 걸어가던 랄라의 뒷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어. 두 살 무렵부터는 산책할 때마다 단풍잎 같은 손으로 조약돌과 도토리 주워 유모차 바구니에 담고, 엄마에게 "이거 잘 가지고 있어야 해요"라며 눈빛으로 당부하곤 했지. 그때 코를 찡긋하며 웃던 아가의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단다.
랄라가 숲 속 산장에서 평온한 주말을 보내던 동안, 엄마는 집에서 일본 영화를 세 편이나 감상했단다. 10월이 되면 엄마는 시(詩)가, 영화가, 차이라떼가 고파지거든. 그래서 조용한 집에서 포근한 야옹이 담요 속으로 파고들어 실컷 영화 삼매경에 빠졌지. 세 편의 영화는 주제와 결이 모두 달랐지만, 그중에서도 <새벽의 모든: 夜明けのすべて>가 가장 마음에 남았어. 영화 후반부의 플라네타리움 장면을 보면서, 어릴 적 랄라와 다녔던 여러 플라네타리움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우리 셋이 함께 한 시간이 새삼 더 소중하게 느껴졌단다. 랄라의 생일을 맞아, 그 영화의 여자 주인공 후지사와 미사(藤沢美紗)가 내레이션으로 읽던 <밤에 관한 메모: 夜についてのメモ>를 너와 함께 나누고 싶구나.
랄라가 가끔 "엄마, 나 일 하기 싫어요. 다시 어린 시절도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말할 때가 있지. 그럴 때 이 글이 너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면 좋겠구나.
<밤에 관한 메모>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이건 영국 속담인데, 인간은 옛날부터 새벽에 희망을 느꼈던 것 같다.
확실히 아침이 없었다면 모든 생명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밤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지구 밖 세계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밤이 찾아와 줘서 우리는 어둠 너머 무한한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나는 종종 이대로 쭉 밤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영원히 밤하늘을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어둠과 정적이 나를 이 세계와 연결하고 있다.
다른 곳에 사는 누군가는 잠들지 못한 채 밤을 보내면서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이 세계는 움직이고 있다.
시속 1,700km로 지구가 자전하는 한은 밤이나 아침이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지구가 시속 11만 km로 공전하는 한 같은 밤이나 같은 아침은 존재하기 힘들다.
지금, 여기에만 있는 어둠과 빛, 모든 것은 계속 변한다.
하나의 과학적 진실.
기쁨으로 가득 찬 날도 슬픔에 잠긴 날도 지구가 움직이는 한 반드시 끝난다.
그리고 새로운 새벽이 찾아오는 것이다.
랄라야, 지난 스물세 해 동안 엄마 아빠와 함께 쌓아온 사랑과 신뢰의 시간이, 네가 안아주던 아름드리나무의 깊고 튼튼한 뿌리처럼 너의 중심을 든든히 지탱해 주길 바란다. 앞으로도 안전감과 자유가 늘 랄라와 함께하기를,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언제나 건강하길 소망한단다. 그리고 생일 이틀 전에 들려온 첫 직장에서의 첫 승진 소식도 진심으로 축하해! 어떤 자리에서 일을 하든, 랄라가 추구하는 일과 쉼의 조화로운 리듬 속에서 살아가기를 응원할게.
사랑한다. 우리 아가.
2025년 10월 30일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