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by Rainsonata

2011년 2월 9일


할머니가 안 계신 이 세상 속에서 맞이하는 추석과 설날은 그냥 시시하기만 하다.


명절이면 제일 먼저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인사를 드리고, 할머니의 만수무강을 빌어드릴 수 있었던 지난날들이 그리워 뼛속 마디마디까지 슬픔이 사무쳐온다. 그뿐인가... 매일 같은 시간에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렸었는데, 이제는 그 시간에 할머니가 아닌 엄마가 대신 전화를 받으신다. 엄마는 당신 핸드폰과 할머니가 쓰시던 핸드폰 두 개를 모두 가방에 넣고 외출하신다. 나는 가끔 우리 집 전화에 저장된 단축다이얼로 할머니 핸드폰에 전화를 한다. 엄마가 받으면 천연덕스럽게, "할머니? 언제 다시 나오셨어요?"라고 우스개 소리도 한다. 그러면 엄마도 "그러게, 그게 그렇게 됐어"라고 받아치신다. 하지만 웃음도 잠시... 엄마는 아직도 할머니께 매일 진지를 올리시고 계시다는 걸 알기에, 엄마 잃은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치고,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의료계에 불러일으킨 정신의학자 Elizabeth Kubler-Ross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사별에 대해 (1) 죽음에 대한 부정ㆍ고립, (2) 분노, (3) 협상ㆍ타협, (4) 우울, (5) 수용이라는 다섯 단계의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기 전에는 그냥 이론으로 배웠던 심리학이, 지금은 나를 돌아보고 추스를 수 있는 큰 힘이 되어주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애도에는 유효기간이라는 것이 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4)(5)의 단계를 넘나들고 있지 싶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할머니께서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실까? 할머니는 분명히 나에게 남겨진 삶이 충만하기를 바라시겠지? 나의 건강과 내 가족의 건강을 제일 첫째로 바라실 거고, 가족 간의 화목, 그리고 또 하나는 나의 자아발전 일 거야. 할머니를 잊지 않고 영원히 그리워하면서도, 내가 게을러지지 않고 내 삶에 열정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 이런 생각을 혼자서 곰곰이 해오던 중, 무력감과 맞서 새롭게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드디어 찾았다.


그건 다름 아닌 공부.


요즘 한국에서도 EBS 채널을 통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하버드대 교수 Michael Sandel의 <Justice>를 읽고 있는데, 이 책이 계기가 되어 철학에 관심이 깊어졌다. 주로 Micahel Sandel 은 정치철학을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나는 이번에 도덕철학 독파에 도전장을 던지려고 한다. 할머니께서는 늘 공부하는 모습의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 단 한 번도 다그치시지 않으셨지만, 스스로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읽고 쓰면서 배우려는 나의 노력에 큰 가치를 두셨고, 항상 응원해 주셨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이며 사고의 역사이다. 여름이 올 때까지 나는 책들과 씨름하며 삶의 의미를 깨닫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래서 좀 더 건강한 영혼으로 할머니를 그리워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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