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눈물

by Rainsonata

2013년 1월 10일


지난여름 한국에 있으면서, 음악 봉사를 하시는 엄마를 따라 치매 노인 요양원에 간 적이 있다. 엄마는 요양원에 들어가시기 전에 나한데 말씀하셨다. “아마 너도 할머니 할아버지들 보면 울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서 많이 울었어. 그런데 나는 연주를 해야 하니까 계속 울고 있을 수만도 없고, 실례가 되는 것도 같아서, 이제는 안 운다.” 깨끗하고 정갈한 요양원은 세 동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엄마가 색소폰을 연주하시는 곳은 주방과 휴식 공간이 마련된 곳이었고, 나머지 두 동의 별관은 구조 변경 공사가 한창이었다. 과일 화채와 약식을 준비하시느냐 분주하신 주방 아주머니를 도와, 할머니 할아버지께 간식이 담긴 접시를 하나씩 전해드리는 동안, 엄마는 공연 준비가 한창이셨다.

거실에 마련된 무대 앞에 앉아 계신 수십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는 모두 치매를 앓고 계셨다. 엄마는 노인 분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주로 흘러간 가요나 민요를 연주하시는데, 무대 중앙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음악이 연주되면 노래방처럼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르실 수 있도록 대형 텔레비전이 놓여있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어르신들께서는 아시는 노래가 나오면 장단에 맞춰 손뼉도 치시고 일어나서 따라 부르시기도 하며 흥겨워하셨다. 나도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진도 찍어드리고,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 몇 분을 화장실로 안내해 용변 보시는 걸 도와드리고 하는 사이 시간이 꽤 빨리 지나갔다. 분주함 덕분에 눈물 흘릴 겨를도 없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할머니께서 생전에 즐겨 부르시던 흘러간 가요가 연주되기 시작했다.

이일을 어쩌나… 아니 전주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흘러내리더니, 이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꺼억 꺼억 흐느끼게 된 것이다. 응접실에 가방과 모든 소지품을 놔두고 왔기에, 손수건도 티슈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는, 마구 흘러내리는 눈물부터 해결하기 위해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응접실 방문을 꼭 닫고 혼자 덩그러니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엄마의 연주는 계속되고, 나는 복받치는 감정을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냥 목 놓아 울었다.

할머니는 평소에 차분하시고 고아하신 분이셨지만, 이외로 성격에 반전이 있으신 재미있고 흥이 많으신 분이셨다. 배구나 축구 경기를 보실 때면 어린 손주들보다 더욱 열렬히 응원하셨고, 가요무대나 전국 노래자랑을 시청하실 때는 다양한 노래를 따라 부르시거나 손으로 박자를 맞추시며 흥겨워하셨다. 가끔 정말 마음에 드는 곡을 만나면, 종이와 연필을 건네시며 가사를 크게 적어달라고 내게 부탁도 하셨다. 할머니를 모시고 노래방에 가면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시다가도, 할머니께 협박조로 무조건 부르셔야 한다고 다그치면 한 곡 두 곡 애창곡을 말씀해 주셨고, 노래가 시작되면 음악에 몰입해서 열심히 부르셨다. 난 그런 할머니를 옆에서 지켜보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소녀 같은 할머니께서 박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시려고, 최대한 집중해서 모니터를 응시하며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애잔하면서도 할머니의 노력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우리와 함께 이 순간을 즐기실 수 있는 할머니의 건재함에 감사했다.

불과 몇 년 전의 추억이다. 십 년 전의 추억도 아닌, 정말 수년 전의 일어난 일들이 순간 물거품으로 바뀌어버리는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인생의 무상함에 정말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처음에는 엄마의 연주를 들으며 할머니 생각이 나서 흘린 슬픔과 그리움의 눈물이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분노의 눈물로 바뀐 것이다. 저 청중 속에 우리 할머니가 계셨으면 했다. 치매에 걸리셨으면 어떤가? 할머니께서 나를 못 알아보시면 내가 할머니를 알아보면 되는 거다. 할머니는 생전에 당신께서 치매를 앓게 되실까 봐 심하게 걱정하셨다. 워낙 깔끔하시고 단정하신 분이라 당신 스스로 위생 관리를 할 수 없게 되실까 봐, 자식들 고생시키실까 봐, 죽으면 죽었지 치매에는 걸리고 싶지 않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소원대로 깨끗한 몸과 맑은 정신으로 마지막 날까지 지내시다 숨을 거두셨다.

할머니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까? 할머니는 지금 어디 계실까? 할머니께서 지금 이렇게 분에 겨워 씩씩 거리며 울고 있는 나를 보고 계시다면, 너무 가슴 아파하실 것 같다는 생각에 또 한 번 내 가슴도 미어졌다. 한참을 원 없이 울고 나니, 비록 내 눈과 얼굴은 퉁퉁 부었어도, 오장육부는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멋쩍은 표정으로 응접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무대에서 열심히 색소폰을 연주하고 계신 엄마가 나를 보고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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