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한 그릇.
섣달그믐날 밤, 허름한 행색의 여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우동집으로 들어온다.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뗀 여자는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할 수 있냐고 묻고,
주인은 우동 한 그릇에 셋이 충분히 나눠먹을 우동을 담아 내어준다.
여주인은 그다음 해도,
그 다음다음 해도 그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둔다.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이라는 동화는
언제나 우동을 먹을 때마다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야기였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일본에서 섣달그믐 밤에 먹는 것은 우동이 아니라 소바였다는 사실에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원작 제목은 「一杯のかけそば(잇파이노 카케소바) 로 직역하면 “한 그릇의 메밀국수(소바)”다.이걸 “年越しそば(도시코시 소바)”, 즉 해넘이 소바라고 하는데 긴 면발처럼 “길고 오래 살라”는 의미라고 한다.
아마 80~90년대에 한국 독자들에게 생소한 소바보다는 우동이 더 대중적인 음식이었기에 그렇게 의역하지 않았을까 싶다. 면 종류보다는 가난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가 주가 되니 그랬던 것도 같고.
어린 시절 할머니는 꼭 외상으로
라면 사 오는 심부름은 나를 보냈다.
심부름을 시켜도 가지 않는 언니와 어린 남동생.
늘 남는 건 만만한 나였으니, 별 수 없지.
“할매가 내일모레 돈 갖다드린다고
안성탕면 두 개만 사 오래요.”
돈도 없이 라면을 사러 가며 나는 쭈뼛대며
겨우 우동 한 그릇을 시키던 아이들의 엄마가 된다.
우동집 주인 부부처럼 슈퍼 아주머니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너무 싫은 티를 내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마음 속으로 빌면서.
’할머니가 내일모레 돈 갖다드린다고
안성탕면 두 개만 사 오래요.’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걸어가는 동안 몇 번을
마음속으로 연습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느리게 걸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늦게 걸어 겨우 도착한 슈퍼 앞.
아직 한 마디도 못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변하는 아주머니의 눈빛은 또 얼마나 차갑던지.
(세상은 항상 동화 같이 아름답지 않다는 걸
나는 아주머니의 눈빛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있잖아요…할머니 가요….”
“왜? 뭐?“
”할머니가 내일모레 드린다고요…“
“뭐?!뭐라꼬?!”
“할매가 요 …내일 모레 돈 갖다드린다고요…. “
안성탕면 두 개만 주라고…“
”너거집은 맨날 천날 외상이가?!,“
어리다고 소리가 덜 들리는 것도 아닌데 ,
신경질적으로 라면을 던지듯 쥐여주곤 인사도 없다.
”안, 안녕히…. 계세요.“
인사받을 생각도 없다는 걸 알지만 인사를 안 하면
엄마가 없는 티가 난다고 할까 봐 개미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두근대는 심장을 달래며 집으로 달려갔다.
수퍼아주머니도 우동집 주인 같이 다정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2인분 같은 1인분을 달라는 것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