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꽤 오랫동안 수면에 문제가 있었던 지라 며칠 못 잔다고 큰 문제는 없겠지 하고 생각한 것은 완전한 나의 오만이었다. 캠프가 끝나고 약은 떨어져 가고 다니던 병원에선 대리처방은 불가하다고 할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면 아마 하루만 안 재워도 동지들 이름 다 불고 밀정까지 했을 것이다.)
서울에 있는 우리 집의 두 배가 넘는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었지만 기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까칠해져서 인종차별하냐라는 이야기까지 하게 된 내가 싫었기 때문이다.
스위트룸이라고 하지만 1993년도의 그대로의 모습이라(그래서 아마도 공사가 필요한 거겠지. )
방은 여러 개가 있었지만 추워서 에어컨을 꺼도 다른 방에서 켜면 전체에서 에어컨바람이 나왔다. (나와 아이는 한국에서 입을 겨울옷을 입고 잠을 잤다. )
세면대와 욕조의 수도꼭지에서는 시뻘건 녹물이 콸콸콸 나왔다.화장실에는 뚜껑 없는 변기에 수도꼭지 두 개가 달린 비데도 있었다.
이틀 뒤면 집에 가니까 집에 가서 씻으면 되지.
소음보다 나아. (소음이 없을 꺼라던 직원의 말과는 달리 낮이 되니 또 공사하는 소리가 났다. 다만 우리가 이전에 머물던 방보단 소리가 작아서 버틸만했다.사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제는 더 이상 싸울 의지도 없었고, 싸울 기운도 없었다. )
감기몸살과 다친 발, 그리고 불면의 나날들.
(태국 약국에서 파는 수면유도제와 멜라토닌을
먹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두통이 심해지고, 어지러웠다.
누가 나를 기절이라도 시켜주면 좋겠다 싶었고,
한 달이 넘도록 떨어져 있던 남편에게 짜증을 내지 않기 위해 진통제를 먹으며 버텼다.
잠을 못 잔 지 나흘이 넘어가니 조금은
해탈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 나도 나흘만 넘기면 밀정 안 할 수 있겠다.)
사실 그 뒤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찌어찌하여 체크아웃을 했고,
밤비행기라 공항 근처 저렴한 숙소를 또 잡았고,
비행기를 탔고, 아침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샌들을 신은 채 수면제를 받으러 병원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