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나의 영웅 체리필터 2집

내 인생 최고의 명반

by 베로니카


며칠 전부터 체리필터가 몹시 고팠다. 정확히 말하면 2집. 낭만고양이 들어있는 그 앨범. 낭만고양이로 메가 히트를 쳤지만 난 사람들이 이 2집 앨범은 낭만고양이를 제외한 다른 노래들이 훨씬 더 매력적이라는 걸 모른다고 생각한다. 진짜 단 한곡도 빼놓을 게 없는 명반 중의 명반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카세트테이프를 뒤졌다. 분홍색 2집 테이프!! 안 보이는 거다. 그런데 나는 정말 빨리 전곡을 재생해서 듣고 싶고. 그래서 네이버에 들어갔다. 다행히 전곡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만원 넘는 돈을 흔쾌히 지불하고(어제 쿠팡에서 냉동삼겹살을 만원 넘게 주고 사기 위해 매우 고민했는데) 2집 앨범을 소중하게 다운로드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체리필터를 처음 만난 게 고등학교 때. 정확히 말하면 고1 때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고스트네이션으로 언제 바뀌었더라)에서 우연히 들었다. 속이 뻥 뚫리는 보컬도 보컬이지만 대학을 가고 싶게 만드는 기타 사운드 때문에 뿅 반해버렸다. 수업이 끝난 어느 날, 서현역 라르고에 갔다. 문제집 사고 남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 체리필터 2집 카세트테이프에 쾌척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열네 곡을 재생하는 동안 나는 결심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기타를 쳐야겠다.


라고.


그렇게 바닥으로 떨어진 모의고사 점수를 올리기 시작했다면, 그것이 진실이다. 이어폰을 꼽고 이 노래를 들으면서 등하교했다. 기계적으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할 때도 들었고, 잠시 책상 앞에 엎드려 잠을 잘 때도 이 테이프를 들었다. 이어폰 꼽고 공부하는 애들 이해 못했는데, 인생 음반을 만나니 정말 충전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유는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대학에 가서 메탈리카의 퓨얼 오케스트라 버전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공부가 진짜 잘되기 시작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이 기타 사운드를 내가 똑같이 내겠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물론 고3 마지막 모의고사 때 담임선생님이 서울권은 힘들겠고, 경기도 쪽 알아보라고 해서 잠시 시무룩했지만 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막판 스퍼트를 펼쳤고, (수학은 망했지만) 대학을 갔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 4년 동안 기타를 쳤다.


물론 학교 현장에 나와 10년 동안은 통기타를 쳤다. 하지만 아직도 간지 하면 일렉기타다. 집에도 놀고 있는 일렉기타가 있다. 줄은 주기적으로 갈아주고 있지만 이제는 닐 자자의 아임 올라잇도 치기 어려울 정도로 실력이 완전 바닥이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대학 가서 체리필터의 "FIVE"를 합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정말 기뻤던 기억으로 일렉기타를 가지고 산다. 그만큼 내 인생의 2% 정도는 체리필터였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교사가 되고 내가 직접 음악을 한다며 남편이랑 <감성밴드 여우비> 하느라 색깔이 달라지기는 했는데, 무의식 중에 내가 계속 체리필터를 찾았던 것 같다.


체리필터는 일단 드럼이랑 베이스가 단단하다. 말이 필요 없다. 안정 그 자체. 밀당이 장난 아니지. 그리고 기타 사운드가 딱 체리필터에서만 나오는 그 사운드가 있다. 군더더기 이퀄라이저 다 빼고 깔끔하게 나오는 그 일렉 사운드. 술이 확 깨는 그 사운드. 거기에 유진이 언니 목소리가 올라가는데, 아 이게 록 스피릿이 아니고 뭐야.


업무가 쌓여있거나, 고민해야 될 게 많던 시기에, 그리고 내가 뭔가 복잡하게 생각했어야 되는 그때, 고2말에서 고3까지, 좀 오그라드는 표현이지만 음악이 나를 잡아줬다고 한다면 뭐야 이 중2병은. 그런데 정말이다. 그리고 편도 80킬로미터를 운전하고 오는 동안에도, 아이들 없는 빈 교실을 정리하고, 업무계획을 쓰면서 머리가 마구 터질 것 같은 순간에도 이 노래를 틀어놓으니, 진짜 스트레스가 정화된다. 한 번 (꼭 구매해서) 다운로드한 뒤에 들어보시라. 기가 막히게 속이 뚫린다.


퇴근길에 울 꼬마를 어린이집에서 픽업해서


"엄마 신곡 다운로드하였다."

하고 자랑스럽게 틀어주는데 체리필터의 cherry Filter를 들어보더니 요것을 반복 재생해달라고 한다. 역시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곡을 알아보는 기특한 딸내미. 그래서 오늘 출근길에 또 이 노래를 틀었더니 가차 없는 표정으로

"어제 체리필터 들어줬잖아. 오늘은 핑크퐁 틀어줘."

한다. 아직 록을 알기엔 네가 어리긴 하지. 엄마가 봐줬다.


암튼, 체리필터 2집 모두 들으시면서 해장하시기를 권하지만 시간 관계상 딱 한곡만 들어야 한다면, 내가 등굣길마다 아침시간을 충전하며 들었던 체리필터 2집, 트랙 2번! 'cherry Filter' 추천하겠다. 오늘 퇴근길도, 체리필터로 충전하고 또 새로운 준비를 망설임 없이 해나 갈 것이다. 기대하시라! 체리필터 언니 오빠들을 만나볼 일이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음악을 하고 있는지, 한 시간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좋겠다.



come on come on come to the 체리필터!
기다려 나를 한번 믿어주겠니 많은 것을 잃고 두려워 포기해 버리고 싶지만
그런 내가 지친 내가 일어설 수 있는 건 바보 같은 그러나 멋진 바로 열정 때문이야

I love so much 그런 네가 있어 고마워
I love you you so much 널 위한 melody
l'm so silly but let me high 내 맘속에 묻어둔 my story
l'm so silly but let me high 너에게 전해줄 my heart
l'm so silly but let me high 나의 모든 희망을 담은 my songs
l'm so silly but let me high 만들어 보일게

때로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한심스레 너를 비웃던 또 다른 나 자신이 있어
이젠 네가 나의 미래 항상 그래 왔지만 너를 위해 빛나는 날개 그걸 손질해둘게

I love so much 더 새로운 곳으로 끌어줘
I love you you so much 영원한 melody
l'm so silly but let me high 내 맘속에 묻어둔 my story
l'm so silly but let me high 너에게 전해줄 my heart
l'm so silly but let me high 나의 모든 희망을 담은 my songs
l'm so silly but let me high 들려줄게


-체리필터 2집 <cherry Filter>-


fin.


이러한 시절도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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