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음악만든 나비효과, 일렉기타
언니와 나는 그 속에서 살아남아 기타를 쳤다
어제 -키워드-편에 달린 김명동 언니의 댓글을 보고 생각했다. 우리 대학 때 기타 참 잘 쳤다고. 김명동 언니는 02학번. 나는 03학번이었고 밴드 특성상 남자가 좀 더 많았다. 그리고 김언니와 나는 흔하지 않은 여자 일렉기타 선후배 사이였다.
밴드에는 교대에 몇 없는 남자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체리필터와 신해철로 고등학교 때 예열을 하고 밴드를 하겠다는 맘을 먹었다. 그래서 교대에 딸랑 두 개 있는. 그 와중에 신입생 유치를 위해 경쟁하는 밴드 중 하나에 들어갔다. 인터넷으로 열심히 신입생 유치를 하던 선배가 새터 때 내가 인사를 하러 가자 생각보다 좀 실망한 눈초리였고 다 구겨진 붕어즙 파우치를 건넸었다. 그렇게 밴드 생활을 시작했다.
다양한 생활들이 있었지만 단연 대학 하면 병정놀이다. 똥 군기가 아직도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의 내가 생각하면 똥 군기도 아닌 병정놀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어허 선배가. 어허 후배가. 똑바로 안 하냐. 뭐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살았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곧 꼰대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의 집합소 같기도 했다.
여자가 일렉 치기 어려워.
여자는 보통 베이스나 치지 뭐.
넌 일 렉쳐도 될 덩치다.
닐 자자? 아임 올라잇? 저거 아무나 못 쳐. 힘이 얼마나 필요한데.
캐논? 그거 아무나 치는 거 아니야.
그냥 대충하고 졸업해. 음악으로 먹고살 거 아니잖아.
믿을 수 없겠지만 내가 듣고 차마 보내지 못해 마음에 품어왔던 아름다운 단어들이다. 생각해보니 열 받네. 아니, 여자라서 못 치면 일렉치겠다고 들어온 나는 왜 받아줌? 왜 줄 갈게 시킴? 왜 납땜 다 시킴? 왜 스피커 똑같이 다 옮기고 똑같이 갈굼 당하고 똑같이 술 먹였으면서 왜 내가 연주곡을 치려니까 그걸 어떻게 치냐고 말을 하냐. 오른손 힘이 어때서 뮤트가 어떻고. 왼손에 굳은살은 배기고 그런 말을 하냐고 하질 않나.
하여간. 병정놀이의 폐해와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온갖 일은 다 부려먹고 정작 기타 연주에 관해서는 한없이 보수적인 대화로 명동이 언니와 나를 후려치던 군대 안 간 사람들도 있었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타를 참 잘 쳤다. 왜 우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냐면 내가 명동이 언니를 보면서 남녀가 아닌 그냥 대학생 기타 치는 걸로는 이 동네에서 우리가 제일 잘하겠다는 자부심이 있어서다. 명동이 언니는 어지간한 메탈리카의 인기곡을 다 카피해서 연주할 줄 알았고 엑스재팬의 트윈 기타 애드리브를 연주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기가 막힌 실력이다.
그리고 나는 연주곡에 좀 집착했다. 닐 자자의 아임 올라잇, 캐논 변주곡 락버전, 시암 쉐이드의 prayer, 미스터 빅의 대디 브라더, 스키드로의 forever와 블랙홀의 거지에서 황제까지 리드기타를 다 카피해서 연주하고 졸업했다. 속주로는 어디 안 밀리던 때가 있었다. 참으로 달달한 라테의 추억이로다.
얼마 전 기타를 꺼내 연주해보았다. 그런데 아임 올라잇 여덟 마디째부터 손가락이 꼬이기 시작했다. 다른 곡도 뭐 죄다 마찬가지다. 당연한 거다. 교실에서 통기타만 사랑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일렉이 순순히 손에 익어줄 리가. 얼마나 도도한데. 다다음주에 교사학습공동체 때 내가 진행할 차례가 되어 오프닝을 일렉 연주로 할 욕심이 조금 있었는데 아무래도 결국 통기타를 쳐야 할 것 같다. 개똥벌레라든가.
오늘 안 그래도 기타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친구가 우리 연주 동영상 있느냐고 묻는 거다. 나도 딱 그 생각을 했는데. 우리 그때 박자만 대충 맞춘 게 아니라 진짜 소울을 담아서 참 잘했거든. 그때는 내가 음원을 내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도 안 하고 살았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연습했었지. 그런데 지금껏 음원 발표한 사람이 나 하나다. 나는 자부심이 있다. 내가 시작한 악기와 음악에 대한 어떠한 결과물이 있다는 것이 말이다. 물론 용감한 우리 남편이 있어서 감성밴드 여우비가 가능했다. 그때 너무 혹독하게 해서 그런지 음원을 10년 가까이 발표 못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 멜로디 스케치를 이어가고 있고, 저작권료를 받고, 생일 축하해요 노래는 그림책으로 만들어져 인세도 받았다. 기타로 시작해 병정놀이를 버틴 대가 치고는 난 참 훌륭하게 나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대학 연주 동영상을 찾게 되는 날이 온다면 우리 남편과 딸에게 가보로 남겨줄 셈이다.
약 한 달 전에 김명동 언니를 만났다. 아이를 데리고. 맥포머스를 조립해주고, 떡볶이와 김밥을 아이 입에 반, 우리 입에 반 넣으며 신나게 대화했다. 우리는 그때 참 예뻤고. 기타도 잘 쳤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유야 어쨌든, 일렉기타에 대한 자부심은 쳐본 사람만 알지. 아무튼. 나는 사십이 되기 전에 대학 때 쳤던 곡들을 다시 연주해보고 마흔을 맞이할 것이다. 일단, 닐 자자의 아임 올라잇부터.
예쁜 줄도 모르고 살았던 예뻤던 날들, 안녕.
언니. 우리 또 만납시다. 부피가 커지긴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예쁨.
Fin.
이사진을 보니 정말 팔뚝이 얇았구나. 내일 다이어트 한약 상담이라도 받아봐야 하나. 정말 날씬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