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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 Feb 02. 2024

이력서에 거짓말 좀 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거짓말과 이력서

  한 회사, 혹은 한 프로젝트팀에서 영향력이 커지다 보면 흔히 인사라고 하는 채용 결정권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회사에 다니기 전에는 인사 담당자 혼자 하루 종일 이력서를 검토하고, 면접 준비를 하고, 지원자의 인사 과정을 책임지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내가 면접관으로 들어가거나, 누군가를 합격시키고 또 탈락시킬 만한 일이 생기고 나니 인사라는 건 하나의 긴 과정으로써 존재하며 그 안에 인사 담당자는 물론, 나 같은 현직자의 역할도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더라.


  수십 번의 면접을 진행하면서 지원자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직접 만들고, 인재 선별 과정을 구조화하고, 실질적인 테스트를 만들고 운영하고, 괜찮다고 생각되면 면접을 진행하고, 어떤 질문을 해야 원하는 인재를 선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등 전체적인 인사 과정에 참여하고 또 운영하면서 느낀 점도, 또 지원자들에게 배운 점도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정말 어이없고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공백 제외: 2879자


목차

1. 과장, 그리고 이력서

- 거짓말 사례

2. 인사 담당자가 우스워요?

- 해외 유학생의 이력서

3. 이력서란?




1. 과장, 그리고 이력서

  인사 과정에 현직자의 역할이 존재한다는 건 다르게 말해서 내가 할 일을 모두 다 하면서도 따로 시간을 내어 지원자가 제출한 자료들을 꼼꼼히 읽고 판단해서 면접까지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지원자를 판단하는 과정 자체는 나에게 추가 업무의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을 쪼개서 확인한 이력서에 거짓말이 있다는 게 보이면 기분이 정말 나빠진다.


  대학생이라고 하면 스펙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물론 한국 취업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취준생의 스펙은 경쟁의 끝에서 굉장히 뛰어난 완성체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나처럼 외국에 있는 유학생이라면 한국에서 취업하는 취준생들보다 비교적 스펙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외국에서 혼자 살아가며 취업한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은 나도 잘 알기에 당연히 텅텅 빈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고 싶어서 거짓말을 하려는 마음도, 몇 줄 없는 이력을 과장해서 늘리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게 용납될 수는 없다는 걸 지원자들은 모른다. 그리고 그게 결국은 자신의 약점이 된다는 것도 말이다


  다들 헬륨을 샀더니 과자를 사은품으로 준다고 하는 우스갯소리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정작 까보면 얼마 들어있지도 않는 내용물을 과대 포장하는 실태를 지적하고 희화화하는 말이지 않은가? 그 어느 소비자도 대 포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세 살짜리 어린이도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 그리고 특히 유학생 중에는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한 지원자가 우리 회사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서류 심사 및 면접을 내가 진행해야 했었기에 난 시간을 쪼개서 그 지원자의 이력서를 확인했고, 그곳에는 과거 우리 회사에서 인턴으로 업무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만약 내가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같은 회사에서 인턴을 경험한 지원자가 있다면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 지원자는 상세 내용에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적어놨더라.


지원자: 홍길동
학력: A 학교
경력: 3개월 인턴
회사: A 회사
내용: A 프로젝트 모든 업무를 담당함


  물론 인턴이니까, 학생이니까 멋모르고 이상하게 적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적은 내용은 그저 예시일 뿐이다. 인턴으로서 절대 진행할 수 없는 업무임은 물론, 그중 하나만 진행한다손 치더라도 3개월로는 부족한 업무량을 당당하게 했다고 적어놨더라. 다른 회사에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회사에 지원하면서 뻔히 회사 상황을 다 아는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 학생은 서류에서 떨어졌다. 거짓말하는 지원자는 면접 볼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더 웃긴 건 얼마 뒤 같은 포지션으로 다른 지원자가 이력서를 내밀었다.


지원자: 김길동
학력: A 학교
경력: 3개월 인턴
회사: A 회사
내용: A 프로젝트의 모든 업무를 담당함


  같은 내용을 돌려쓰는 건지 세부 내용이 거의 똑같더라. 이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2. 인사 담당자가 우스워요?

  이력서는 본인이 직접 작성하는 서류이기에 증명할 수 없는 일을 적더라도 자기가 제대로 거짓말하여 속일 수만 있다면 절대 본인 외에는 진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A 회사에서 인턴 증명서 3개월짜리를 받았다고 가정하고, 증명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게 대표 직무뿐이라면 어떨까? 거기서 해당 지원자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상세 직무까지 적어놓는 인턴 증명서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분명 저 위 두 지원자는 한국에서 저런 이력서로 한국 회사의 면접관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타국이기에 증명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는 맹점을 이용해서 거짓으로 이력서를 작성하고 한국에서 사기 취업을 한 유학생의 사례도 적지 않게 알고 있고,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저런 식으로 진실 30%에 거짓 70%를 섞어서 취업한 사람은 매우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나라에서 저런 식으로 속인다는 건 무슨 배짱인가? 난 지금까지 수많은 지원자의 이력서를 보면서 단 한 번도 한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지원자들 한 명 한 명에게 배울 점이 가득했고, 열심히 사는 그들이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딱! 저 두 지원자만 빼고 말이다.


  거짓말을 하는 건 자유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인사 담당자에는 현직자도 포함된다. 이미 그 회사의 어지간한 부서의 업무와 상황 정도는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인사 담당까지 맡는다는 건 주위 팀원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받고 있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고작 그런 이력서 따위에 속을 거로 생각하는 건가?


거짓으로 빌린 땅에 탑을 세울 수는 없다. 그걸 왜 모르는 걸까?


3. 이력서란?

  이력서는 자기 능력을 과대 포장하는 곳이 아니다. 위에 예시를 들었던 지원자들처럼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하거나, 할 수도 없는 일을 했다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서류 통과가 최종 합격을 뜻하는 게 아니다. 거짓말로 서류를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거짓말로 면접까지 통과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그게 당연하다.


  이력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경험과 능력을 최대한 풍성하게 잘 표현하는 것이다. 많은 취준생이 놓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정말 멋진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력서에서는 조금도 멋지지 않게 적는다. 그리고 멋지지 않으니 다른 경험을 찾겠다고 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물론 경험 자체가 풍부한 것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멋진 경험과 능력을 멋지게 표현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멋지고 귀중한 능력과 경험도 이력서에만 적히면 조금도 멋지지 않을 것이며, 수십 또는 수백 명의 지원자들 사이에서 멋지지 않은 이력서가 서류 통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때 대학 입시에 입학 사정관 제도가 떠오르면서 자기소개서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난 적 있었다. 그리고 그때 유행했던 말이 '자소설'이란 말이었다. 자기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소설처럼 별것 아닌 걸 과하게 포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소설의 시대가 지났다고 생각한다. 자소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기를 얼마나 솔직하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솔직함에 근거와 과정, 결론 등이 명확하고 분명하게 나와 있다면 그것이 가장 최고의 이력서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지원자처럼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할 필요가 없다. 할 수 없었던 일을 했다고 할 필요도 없다. 했던 일을 자세하고 솔직하게 적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그 지원자가 얻을 수 있는 건 거짓으로 점철되어 점점 더 초라해지는 자기 자신일 것이다



세 줄 요약

1. 인사 과정에는 현직자도 참여한다.

2. 인턴의 거짓말에 속을 멍청한 현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3. 좋은 이력서란, 목적에 맞게 솔직하고도 상세한 내용을 적은 이력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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