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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 Jan 26. 2024

난 더 이상 진심 어린 관계를 만들 수 없습니다

순수함을 간직했던 그 관계가 그립다

  여느 때처럼 주변 사람들은 뭐 하고 사나 구경하며 인스타 스토리를 넘기던 중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내 손을 잡아챈 스토리가 하나 있었더랬다. 한 친구가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이었는데, 별로 특별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멀리 떨어져 지내던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신나게 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 서로 인사하며 헤어지는 그런 굉장히 평범한 내용이었다.


  참 별 거 아닌 장면이었는데, 이 장면을 보자마자 그저 넘기기만 하던 내 손은 관성을 잊은 듯 멈춰버리더라. 왜냐면 서로 인사하며 헤어지는 그들은 마치 상대방을 전쟁터에 죽으러 가는 병사라고 생각하는 듯 세상이 떠나가라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그들이 왜 울고 있는지, 왜 그런 감정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립고 또 슬픈 추억




공백 제외: 1722자


목차

1. 진심을 나눈 사이

2. 추억, 그래서 슬픔




1. 진심을 나눈 사이

  언젠가 제삼자가 촬영한 영상이 아닌, 현실에서 직접 저런 장면을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그때도 똑같았다. 21세기에 연락이 안 될 것도 아니고, 언제든지 영상통화로 연락할 수 있음은 물론, 짧지는 않지만 길지도 않은 잠깐의 기다림 후에는 다시 또 만나서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 서글펐다. 정말 아닌 헤어짐이고, 잠깐 떨어져 있을 뿐인데도 그냥 순간 자체가 굉장히 서러웠다.


진심을 나눈 사이라 그랬을까?


  살아온 삶의 굴곡이 가파르면 가파를수록 그 사람의 눈빛은 날카로워지고 차가워진다.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금 더 차갑게 조금 더 날카롭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변화다. 학습 능력이 있는 인간이라면 자기 경험 속에서 비슷한 순간을 찾아 계속해서 눈앞의 사람을 대조하고 비교하고 판단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사기당한 경험이 있으면 조심하는 게 당연하고 정상적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과 마음은 차갑고 날카로워진다. 모든 것에 계산이 들어가고, 마음에 계산이 차지한 범위만큼 진심은 밀려난다.


저 새끼 저거 왜 나한테 호의를 베풀지?


  만약 누군가가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달리 진심으로 사람을 대한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를 마음을 다한 관계로 끌고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상대방이 의심과 냉소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른 한쪽 손뼉을 갖다 대주지 않는다면 절대 소리가 없다.


이렇게 만나기도, 만들기도 힘든 관계이기에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고, 귀중하고,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2. 추억, 그래서 슬픔

  만약 그런 관계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 그 영상을 보고서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만들 수도, 만날 수도 없는 관계,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다시는 없을 것 같은 그런 사이, 그런 모습이 담겨 있는 영상 속에서 과거의 자신을 보고 또 추억하며 밀려오는 그리움보다 더 강한 슬픔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친구가 부럽더라. 나와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데, 아직 그런 순수함과 그런 관계를 지켜나가고 있다는 부러웠다.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이라고 생각해서 슬펐던 걸까, 아니면 다시는 오지 않을 과거의 내가 그리웠던 걸까?


  그 시절의 나는 약했고, 어렸고, 순수했고, 진심이었다. 앞뒤 계산하지 않았고, 그냥 순수하게 상대방을 좋아했고, 그래서 실수도 많이 했고, 노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랬었기에 누군가에겐 추하게 보일 정도로 모든 걸 다 털어놓기도 했고, 마음을 나누기도 했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가파르고, 누구보다 고독했던 시간나를 강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차갑고 날카롭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나는 그 누구 앞에서도 약해질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더 슬프고 그리웠던 것 같다. 강하지도 않고, 누구보다 부족했지만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고, 고독하지 않았고, 홀로 서지 않아도 됐었다. 하지만 환경과 시간은 나를 그곳에 쉬이 두려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계산적이고, 계획적이고, 차갑고, 날카롭게 바라보지 않으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무너뜨릴 기세로 나를 압박했다. 내가 지나온 모든 순간 에서 누구에게도 의지할 없었고, 혼자서 모든 헤쳐 나가야 했다. 그렇게 점점 진심을 나눈 사이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잊혀갔다.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순간들이라 만약 내가 그 스토리를 보지 않았다면 절대 다시는 떠올릴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몇 초의 영상이 그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더라. 그리고 다시 한번 확신이 들었다. 누구 앞에서도 약해질 수 없는 지금, 그런 관계를 마음껏 받아들일 순간이 더 이상 내 인생엔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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