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나를 위한 조언

by 차진호

군대에서의 생활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득했습니다. 불안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 보기 위해서 제대 후에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유럽 배낭여행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배낭여행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했던 것은 예식장의 뷔페 코너에서 음식을 세팅하고 치우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저기 테이블을 돌면서 비워진 접시를 걷어서 가져오는 것인데, 그 당시 지배인으로 불렸던 형은 양손과 팔뚝을 이용해서 한 번에 여러 접시를 서커스 하듯이 들고 다녔습니다. 처음에 그런 모습을 따라 하다가 그릇을 엎어서 난감한 상황이 있었기에 하나씩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나름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저의 모습을 지켜보던 지배인 형은 제게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 그리고 그 후로 한참을 지나고서야 일머리 없이 움직였던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았고, 짧은 말이지만 딱 맞는 조언의 말을 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점에서의 생활은 반복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전날 주문했던 각종 야채를 비롯한 식자재를 받습니다. 재료를 손질하고 양념을 만들고 물을 한가득 받아서 육수를 끓입니다. 반찬을 만들기 위해 볶기도 하고 삶아서 무치기도 하고 쉴 새 없이 물과 불, 그리고 칼을 사용해서 재료들의 해체와 결합을 반복합니다. 그 사이 홀에서는 바닥을 쓸고 테이블을 닦고 그릇들을 정리하고, 빈 곳을 채우며 무질서했던 환경을 질서 있고 깔끔한 공간으로 만들어 냅니다.


때때로 반복되는 일상에 평온함을 깨는 일들이 한 번씩 생깁니다. 그것도 한참 바쁠 때, 기술자나 AS를 부를 수도 없는 주말에 하수구가 막히거나 전기가 갑자기 나가거나 식기 세척기와 같은 중요한 기계가 고장이 납니다. 직원들은 빨리 사람을 불러서 해결해 달라고 안달이 납니다. 저 역시 아등바등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쳐 보려는 시늉을 합니다. 당연히 수습이 안 됩니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봐도 주말이라 소용이 없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서야 그런 상황에서의 해결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리하지 말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차분하게 손님에게 응대하면서 기다리다 보면 어디선가 주말에도 달려올 수 있는 분을 찾게 되거나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합니다. 물론 기다림의 시간 동안 직원들과 일부 손님들의 안달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제 몫입니다.


식당이 조금 안정이 된 3년 전부터 점심 장사가 끝나면 태극권을 배우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혼을 한 선배가 태극권을 통해서 아픔을 치유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말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습니다. 가게 일로 지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태극권 수련장을 찾았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태극권은 계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제가 배우는 전통 양식 태극권의 특징은 느리게 동작하는 것입니다. 무술의 동작을 느리고 부드럽게 하면서 균형을 잘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 익숙해서 그런지 느리게 움직이면서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쉬워 보이는 동작이라서 달려들면 균형이 흐트러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관장님께서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라고 말씀을 주십니다. 심지어 비슷한 동작을 했다고 생각하고 자신감 있게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도 무리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무리하지 말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합리적이지 않거나 정도에서 지나치게 벗어나는 것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름대로 경륜에 오른 사람은 똑같은 길을 걷는 누군가가 다른 길로 가는 행동이나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김을 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방향과 방법이 잘못되어서 엉뚱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고 있을 때 지적하는 적확하면서도 완곡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부드럽게 느껴지는 어감에서 뭐라도 하고 있음에 대한 약간의 인정도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의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는 말입니다.


무리해서 잘되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부터 사소한 일을 하는 그 누구라도 무리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 옆에 오랜 경험과 경륜을 가진 사람이 함께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은 수월하게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이 있습니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사춘기의 전형적인 말과 행동을 하고 공부보다는 다른 것들에 관심이 더 많아 보입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기도 했다가, 하지 않아도 될 열등감을 보이기도 합니다. 저도 겪어온 시절이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내가 때로과하게 잔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생각해 보면 호르몬과 유전자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 아들은 많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제하게 됩니다. 그래서 늦은 밤까지 열심히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아들에게 한마디 하였습니다.

“아들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잠이라도 일찍 자라.”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