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가을이었다.
지리산의 가을이 언제나 그렇듯.
가을이면 우리 가족은 지리산에 간다.
22년 동안 약 20회 이상 지리산의 가을을 보러 간 것 같다.
문화심리학자인 김 모 박사님이 가족만의 리추얼을 갖는 것도 좋다고 해서 우리 가족만의 연례행사로 지리산산행을 못 박았다.
그 처음은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의 산행이었다.
나를 많이 아끼는 것 같은데 도통 프러포즈를 하지 않아 이 남자가 장난하나 하고 의심하던 무렵, 그가 지리산 천왕봉으로 등산을 가자고 했다. 텐트며 음식이며 무거운 건 커다란 자기 배낭에 넣고 나는 가벼운 침낭과 옷 간식만 달랑달랑 매고 천왕봉에 올랐다. 지금은 절대 안 되지만 그때는 옛날이라 천왕봉 정상에서 텐트 치고 비박하는 걸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해가 진 후 등산객들은 다 내려가고 나서 우리는 정상 한 귀퉁이에 작은 텐트를 피칭하고 빵과 도시락으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캄캄한 하늘에 별이 총총하고 멀리 산아래의 구례 남원 불빛이 아스라이 보였다.
전 남자친구이자 지금 남편이 잠깐 밖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정상석 옆으로 데려갔다.
배낭에서 부스럭부스럭 흰 와이셔츠 상자 같은 걸 꺼내더니 내게 주었다.
그 안에는 빨간 장미꽃이 빼곡히 담겨있었다. 이곳에서 청혼하고 싶었다고 수줍게 말하는 이 남자에게 엄청 감동했었다. 짐도 무거운데 꽃망가질까 봐 상자에 담아 온 섬세함에 감탄했다. 그래도 울거나 하진 않았다. ㅎㅎ
결혼하고도 천왕봉을 비롯해 지리산에 자주 갔다. 때로는 부부 둘만, 때로는 아이들과 , 어느 해는 친구들과 갔다.
가을에는 거의 한 번씩 갔고, 봄 여름에도 가끔 찾았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산 아래 절에서 한두 시간 거리까지 가거나 길이 편한 노고단이나 바래봉을 갔다.
초등학생일 때 아이들을 데리고 산중턱에 있는 지리산 로터리산장에서 자고 천왕봉에 올랐고, 아이들이 중학생 고등학생 때는 장터목에서 자고 천왕봉 일출을 본 그 산행이 두고두고 멋진 추억이 됐다. 체력 좋은 중학생 아들이 큰 배낭을 대신 짊어지고 산장까지 날라주거나, 딸이 힘들어도 묵묵히 참고 가족을 챙길 때 뿌듯하고 대견했다.
어머니의 산이라고도 하는 지리산
그곳엔 내 기쁨 슬픔 젊음 추억이 퇴적암처럼 켜켜이 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