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감을 따다가 곶감을 말리는 게 어릴 적부터 해온 우리 집 연례행사이다. 감을 따는 게 힘들어서 요즘엔 감을 따지 않고 버리는 경우도 있다지만, 도시로 이사 온 지금도 해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말리고 있다.
곶감은 내게 애증의 간식이다.
어릴 적 설날에 할머니집에 가면 손주 손녀들이 바글바글 했다. 7~80년대에 남아선호사상이 분명하던 할머니는 손녀인 내게는 말린 곶감껍질을 줬고, 손주인 오빠들에게는 곶감을 줬다. 아들은 대를 이을 귀한 존재고 나중에 부모봉양한다고 그러신 거다. 세상이 이렇게 달라질 줄도 모르고 말이다. 요새는 곶감껍질도 말려 차도 끓여 먹고 곶감 보관 시 덮개로도 쓴다지만 나는 어린 시절 기억 때문에 다 내버린다.
우리 집에서 곶감을 말릴 때조차 아버지도 우리에게 곶감을 쉽사리 주지 않으셨다. 그때는 탱자나무가시에 주황감을 꽂아 처마밑에서 주렁주렁 말렸었다, 곶감은 반쯤 말라서 투명한 붉은색이 되고 말랑해졌을 때가 가장 맛있는 때다. 간식이 별로 없던 그 시절 우리는 달고 말랑한 곶감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몰래 빼먹고 땡감 하나를 다시 깍아 꽂아두거나 탱자나무가시를 잘라버리기도 했다. 못 먹게 하는 이유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 손님이라도 오면 접대용으로 쓴다는 것이었다. 감질나게 몇 개만 맛 보여주고 나머지는 대바구니에 담아 시렁에 얹어두셨다. 하얗게 분이 날 때도 못 먹게 하다가 겨울 지나고 곶감수분이 다 빠져 딱딱해지면 그때서야 내주셨다. 그러나 어린 나도 그때는 맛도 시큼해지고 돌처럼 딱딱해진 곶감은 먹기 싫었다.
한풀이하듯 나는 요새도 곶감을 말려서 우리도 실컷 먹고, 지인들에게 조금씩 선물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에겐 마음껏 따먹으라고 하는데도, 마트에 더 맛있는 간식이 널려있어 그런지 아이들은 그다지 먹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난초를 키우는 집이라서 이미 튼튼한 걸이대와 벽걸이용 선풍기가 있어 도움이 되지만 이게 없는 집이라면 빨래 건조대나 옷을 거는 행거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단, 감이 꽤 무겁기 때문에 너무 많이 거는 건 안된다. 다이소에 가면 곶감행거라는 것을 파는데 10개씩 꽂아 말릴 수 있다. S자 고리도 필요하다.
사 먹는 곶감에 비해 내가 말리는 곶감이 훨씬 맛이 달다. 대량으로 깍는 업자들은 기계로 깍아야 하기때문에 덜 익은 감을 따지만, 내가 할 때는 무르기 전 충분히 주황색으로 됐을 때 감을 따서 곶감이 달디달다. 또 대량생산할 때는 곰팡이 안 피고 색이 곱게 나기 위해 유황 훈증처리를 하지만 집에선 어떠한 화학처리도 필요 없다.
나의 비법은 딱하나다. 감자칼로 깍고 일주일 동안 선풍기를 24시간 내내 돌려주는 것이다. 2주 이상 밤에도 창문을 열어두고 중간에 비가 오면 또 선풍기를 돌려주니 곰팡이 없이 잘 마른다.
주황색 곶감이 난초와 함께 꽃처럼 피어나는 가을 베란다 풍경이다.
그토록 먹고 싶던 어린 시절에는 안줘서 못먹더니, 지금은 곶감이 남아 돌아도 혈당과 비만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 많이 먹을 수가 없으니 그것이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