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도 같은 시간

파리체류기

by 레이커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운 좋게도 파리에서 1년간 일할 기회를 얻었다. 돌이켜 보면 당연한 선택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아내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만 3년, 우리에게 아이는 너무도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행여나 출산 과정에서 아내와 아이의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언어나 문화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아내가 출산하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일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매사에 걱정이 앞서고 늘 준비해야 적성이 풀리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새로운 일과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다. 특파원 선발 합격 소식을 알리면서도 걱정이 앞섰던 내게 아내는 용기를 불어다 넣어주었다. 출산 병원을 알아볼 시간은 충분하며 프랑스는 출산 강국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불안함이 완전히 가신 것 아니었지만, 나는 아내의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 파리행을 그렇게 결정했다.


11월의 파리는 몹시 추웠다. '파리 겨울철 기온'만 검색해 보고 코트만 챙겨가도 되겠다고 생각한 건 큰 오산이었다. 파리의 겨울은 서울의 여름처럼 습했다. 습기를 만난 찬 바람은 뼈 마디마디를 시리게 했다. 여름철 서울의 더위가 습도를 만나 불가마를 만들듯, 겨울철 파리의 추위는 습도를 타고 맹위를 떨쳤다. 난방 시설을 갖춘 집이었다고는 하나 한국의 온돌식 난방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해 겨울 나는 감기로 꽤나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놀러 간 것이 아니었기에 파리의 하루는 생각보다 험난했다. 1년 단기 체류이기도 했고 악명 높은 파리의 교통 정체나 주차난을 익히 들어왔기에 차를 구입하거나 리스할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나는 늘 집에서 알마 다리로 향하는 빨간색 버스를 타고 출근했고, 돌아올 때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출근길 버스에서는 이따금씩 퀴퀴한 냄새가 났고, 사람들이 몰리는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이따금씩 소매치기를 주의하라는 한국어 방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파리에서의 생활은 내게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앞 제과점에서 아내의 아침 식사용 바게트와 샌드위치를 사 왔는데 그럴 때면 아내는 늘 미소를 지으며 행복해했다. 나는 지금도 늘 아내에게 혼자였다면 파리의 겨울을 견뎌내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곤 한다. 또 파리의 겨울이 늘 흐리기만 한 건 아니라서 간혹 가다 볕이 좋은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센강의 윤슬과 햇살이 비치는 에펠탑을 바라보며 출근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퇴근하고 나서 우리 부부는 늦은 저녁 식사를 먹으며 수다를 떨곤 했다.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시차 때문에 저녁을 먹다 말고 집에서도 부득이 일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그날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듯해 내게는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저녁 식사가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잔업을 마친 뒤 씻고 나면 아내는 먼저 침대에서 잠들어 있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아내의 손과 아이가 있는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오직 가족의 행복만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