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체류기
11월 파리의 거리는 스산하다. 우리 부부는 창밖 풍경을 내다보며 겨울에 파리를 혼자서 오롯이 지낸다는 건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정확히는 태어날 아기까지 셋이었지만) 다행이라 여기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영미권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나는 토종 한국인에 가까웠기에 성탄절엔 집안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어야 한다는 아내의 말에 곧바로 수긍하지 못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12월이 되기 전부터 트리를 갖다 놓고 각종 장신구로 꾸미자는 제안은 더욱더 낯설게 느껴져 고개는 끄덕거리면서도 '그냥 하는 소리겠지' 하고 치부하고 말았다.
홀몸이 아니었던 아내는 여러 차례 트리에 대해 이야기 했음에도 내가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자 우울해했다. 돌이켜 보니 처갓집에선 늘 성탄절이 다가올 때면 집안에 트리를 환하게 비춰놓고 가족들끼리 선물을 주고받고는 했다. 처음에는 어색한 광경이었지만, 나 역시 어느새 그와 같은 문화를 향유하는 일원이 되자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곤 했다. 결혼 뒤에야 나는 트리가 주는 따뜻한 분위기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어느날 출근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야 출근하면 사람들과 만나지만, 먼 타지에서 아내는 홀몸도 아닌 채로 내가 퇴근할 때만을 기다려야 하지 않은가. 언어도 문화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내가 너무 무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늘 혼자가 아니었지만, 아내는 홀로 스산한 파리의 겨울 반나절을 견뎌야 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액션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덧 12월 초가 돼서야 나는 꽃집을 헤매며 집안에 갖다 둘 트리를 찾아댔다. 너무 커도 작아도 문제일 것 같아 신중을 기했는데, 놀랍게도 트리는 인조 나무가 아니라 진짜 나무(침엽수)였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싶은 크기의 트리를 어깨에 짊어지는 순간 생경한 촉감과 무게에 당황하고 말았다. 차가 없었기에 꽤 먼 거리를 트리를 짊어지고 걸어왔는데 아내는 그 풍경을 보고 아이처럼 기뻐했다.
아내는 매일 같이 트리에 각종 오나먼트와 전구 등을 달며 정성스럽게 채워 넣었고, 성탄절 당일이 되자 비로소 풍성한 트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아내는 유럽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먹는다는 하클렛이라는 별미 요리를 선보였는데, 감자와 소고기 그리고 치즈에 와인을 곁들여 먹으니 마치 전골 요리를 먹은 듯 속이 따뜻해졌다.
노란빛으로 물든 트리를 보며 우리는 온전히 둘이 보내는(역시 태어날 아기까지 셋이긴 하지만) 성탄절을 자축했고,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길 진심으로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