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은 당신과 이해관심으로 얽혀있지 않은 사람에게 받아라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의 조언과 의견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종종 조언은 참고 수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방향 전체를 뒤흔들어 놓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할 때가 있다. 타인의 의견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신의 음성으로 들릴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고민한다. 그 조언이 믿을 만한 것인지. 그리고 여러 명이 각기 다른 조언을 해대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또한 우리의 마음은 조언자가 나보다 월등히 높은 위치에 있는 지식인이나 전문가일 때 더 거세게 동요한다.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결정적이고도 진지한 고민에서는 나보다 높은 사람을 찾는다.
우리는 자신보다 더 배운 사람. 더 오래 산 사람.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 도전을 해본 사람. 험난한 길을 가본 사람의 경험을 듣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나는 최근에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조언을 구할 때는 그 사람이 지식인인지, 전문가인 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그것은 바로 조언자가 나를 인격으로 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 나를 부하 직원, 수강생, 동료, 협력관계 등으로 파악한다면, 그에게서 순수하고도 진실한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나를 무엇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한 번은 진로를 놓고 여러 명의 상사와 차를 타고 오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세 가지 다른 분야의 일을 한 번에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고, 매우 버거운 상태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제 가지치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각각의 분야와 연결된 3명의 상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속마음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세 가지 일 모두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버거웠을 뿐이다.
A: 높은 수준의 업무강도, 낮은 페이, 불편한 인간관계. 항상 꿈꿔왔던 일.
B: 중간 수준의 업무강도, 높은 페이, 평범한 인간관계. 평범한 관심 분야.
C: 높은 수준의 업무강도, 페이 없음. 평범한 인간관계. 불확실한 비전, 흥미로운 일. 그리고 나를 성장시키는 일.
상사1: A 업무의 관계자
나: A를 하는 게 많이 버겁고 힘드네요. B와 C에 전념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A는 정말 제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고, 하면서도 참
상사1 : 나도 B와 C를 해봤고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어. 그런데, A를 지금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나간다면, 이게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앞으로 계속 진행될 프로젝트가 너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거야. 나를 믿고 계속 해나 가보자.
상사2: B업무의 관계자
나: A도 재미있고, C도 참 의미 있는데 세 가지를 다 하려니 버겁네요.
상사2: A를 포기하는 게 좋겠어. 거기서 벌 돈 B에서 쉽게 벌면 되잖니.
사실, 나는 본래 이미 마음속으로 B를 선택하려고 했었고, 모든 준비도 다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편했고, 결정에 확신이 서지 않았었다. 그래서 당시 지도교수님이었던 상사3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었다. 거기서 나는 그의 조언 한 마디에 내가 했던 결정과 모든 생각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상사3: C업무의 관계자
나: A, B, C 모두 다 놓치고 싶지 않아요. 제가 먹고 살 문제를 생각하면, B를 가는 게 맞는데...
상사3: A를 포기하라고는 하지 않을게, 그러나 지금 몰두해야 할 일은 C가 맞아. A는 지금 네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을 것이 분명해. B의 경우에는 너의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일 거야. 그렇지만 결정은 네가 내리는 것이니, 신중히 결정하고 찾아오길.
나는 A와 B를 내려놓았고, C를 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은 A와 B의 냄새가 섞인 일을 C의 영역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A와 B를 내려놓고 C에 전념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끔찍하다. 시쳇말로, 죽도 밥도 안 되었을 것이고,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냄새가 섞여있다는 말을 부언하면, C를 나의 전문 영역으로 두고 A와 B의 방법론이나 내용을 끌어다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깨끗히 가지를 잘라내는 선택은 없다고 본다. 본래 있던 관심과 흥미가 어디로 날아가지는 않으니. 포기했다고 생각한 영역은 신기하게도 최종적으로 선택한 그 영역에 희미하게라도 흘러들어 가더라.)
추가로,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따지면 상사3도 C라는 일에 나를 불러들이기 위해 그런 조언을 한 것이 아니냐"라고 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내가 제자라는 사실 외에는 그 어떠한 일로도 얽혀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상사1과 상사2는 공통적으로 내가 그들의 일과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컸고, 이용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상사3은 나의 장래를 위해 조언을 했고, 상사1과 상사2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위해 조언했다.
물론, 매우 단편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오직 상사3만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나를 관찰해온 교수님였기에 내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라는 인간에 주목하면서 조언을 했고, 다른 두 명은 나의 효용가치 또는 유용성에 관심을 두었다.
여기서 나는 분명히 깨달은 바가 있다. 조언은 '나'라는 인간 존재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나라는 사람의 성장과 미래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하는 것들만 수용해야 한다고. 그래서 스승과 부모의 조언이 위대하고 값진 것이다. 그들은 나를 조건 없이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물론, 이때의 스승은 기술이나 지식을 전수해주는 차원을 넘어 진심으로 나의 인간적 성장을 걱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주목해야 할 진실한 조언>
- 조언하는 사람이 나를 자신의 이해관심(일, 사업)과 결부 짓지 않을 때.
- 조언의 내용이 나라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에 기초해 있을 때.
- 그가 나를 진실로 사랑하고 염려하는 사람(부모, 스승, 친구)일 때.
<조심해야 할 조언>
- 조언하는 사람이 몸 담고 있는 바로 그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고 기회라며 설득하려 들 때.
혹시, 누군가 당신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는가? 그렇다면 바로 조언을 해주기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한 대화와 관찰을 통해 알고 있는가?
그가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고, 행복하기를 바라는가?
그가 자신의 고유한 길을 찾아 나서길 바라는가?
그가 도덕적으로 바르고 선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가?
그가 당신의 자녀라고 했을 때도 그 말을 해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