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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an Oct 05. 2021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키케로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르침

최근, 바쁜 일상 속에서 스토아 철학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은 기분에 스토아 철학에 매달리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외부의 환경으로 불안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면, 신속하게 너 자신으로 돌아가라. 불안과 혼란에 필요 이상으로 노출되지 말라. 끊임없이 너 자신으로 돌아간다면 네가 처한 환경을 더 잘 다스리게 될 것이다. 로마의 오헌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말이다. 최근 스스로 인생에 있어서 격동기에 놓인 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스토아 철학을 조금 더 깊게 파고 보자 마음을 먹은 나는, 그 시작을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와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키케로의 시선에서 바라본, 노년과 우정에 대하여. 지금부터 짧은 지식으로나마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읽은 이 좋은 문장들을, 비전문가의 일반의 시선에서 함께 소박하게 나눠보고자 하여, 이 글을 쓴다.


키케로는 본인의 노년에 대한 고찰을 대 카토의 입을 빌려서 우리에게 말해준다. 흔히 노년에 우리가 떠올리는 것들은 '무기력함, 죽음'등이다. 하지만, 이는 육체적 한계, 자연이 만물에 정해놓은 한계이기에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 바깥에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불평불만은 우리의 처지를 더 낫게 해 주는가? 아니다. 되려, 자신을 처지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대 카토는 라일리우스와 스키피오에게 '노년은 바람에 꺼진 등불처럼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 아닌, 장작이 서서히 타들어가듯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라고 말해준다. 그렇기에 우리는 노년에 대해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말을 전해주는데, 젊을 적에 준비를 한 노인은 자신들이 오히려 쾌락을 사슬에서 벗어나, 육체적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으로 활동적으로 변하면서 더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기에 기뻐한다.

여기서 스토아 철학의 핵심적인 가치가 드러난다. '주어진 것,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안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라.' 환경 탓이나 하면서 나 몰라라 하는 현대인의 풍습과는 사뭇 다른 고전적이고, 누구나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쉬운 조언에 속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항상 끊임없이 기본으로 돌아가서, 화려한 기교를 부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보다, 기본에 충실한, 뿌리가 튼튼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키케로는 이런 말을 우리에게 던진다. '하나 노인은 젊은이보다 형편이 나은 셈이네. 젊은이가 바라는 것을 노인은 벌써 얻었으니까. 젊은이는 오래 살기를 원하지만 노인은 이미 오래 살았으니 말일세.' 조금은 허탈한 웃음이 지어진다.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시기에 있는 자가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는 자보다 낫기에. '그러니 언제든 다가올 수 있는 죽음을 두려워한대서야 어떻게 마음이 굳건할 수 있겠는가?' 조금은 의연하게, 이미 볼 장은 다 봤기에, 다가오는 죽음을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는 그러한 노년이라는 것인가? '또한 지난 시기의 관심사가 사라지듯, 노년의 관심사도 사라지기 마련이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 사람은 인생에 물리게 되어 죽을 때가 되는 것이라네.'

그렇게 서서히 타들어가던 장작은, 불을 꺼트리며, 흙에 섞여 본인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우정에 대한 고찰은 친구인 스키피오가 죽고 난 후의 라일리우스의 입을 빌려서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정(amicitia)은 '사랑하다'(amare)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랑한다' 함은 다름 아니라 사랑의 대상을 필요나 이익을 떠나 자진하여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네. 그렇지만 자네가 특별히 이익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우정에서는 이익이 많이 생기게 마련이네.'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저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서로의 끌림에 의하여 사귀라는 말이다.

현대 사회를 살펴보면, 사람들 사이의 끈끈함을 찾아보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보다, 전화기 너머로 서로의 목소리를 듣거나, 그냥 화면에 나타나는 활자를 통해서 소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소통방식 때문에, 현대인의 우정은 금방 타올랐다가, 다시 금방 식어버리고는 한다. 그에 대해 키케로는 이런 말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정이 억지로 깨진 것이 아니라 다 타버린 것 같은 인상을 주어야 하네.' 우리는 흔히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처음에는 즐겁게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뜸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식으로 우정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항상 주의하라는 것이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또한, 우정에 금이 갈 것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는 '때로는 참고 견디는 것이 현명하다네.'라는 말을 남긴다. '사근사근함는 친구를 낳고, 바른말은 미움을 낳는다.' 때로는 직언보다는 웃어넘기는 것이, 우정을 위해서는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고 키케로는 말한다. 하지만 친구라면 항상 충고를 하는 것도, 충고를 받는 것도 꺼려서는 안 된다. 우정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우정이기에, 우리는 '바른말에 귀가 먼' 절망적인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친구의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하고, 항상 친구가 최선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키케로의 가르침들은 어찌 보면 고리타분한 것들이다. 주변의 어른들이 늘 해주는 조언과 큰 차이점이 없는 것 같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항상 끊임없이 고리타분한, 기본적인 것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고 살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기본기에 충실한 것보다 듣기 좋은, 화려한 기교들을 선호하고는 하는데, 항상 스스로의 마음을 견지해야 하고 중심을 굳건히 잡고 있어야 한다.

기본기가 흔들리는 사람은 화려한 기교를 부릴 수도 없기에, 우리는 항상 끊임없이 나 자신으로, 우리의 기본으로 돌아가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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