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an Sep 28. 2022

나의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유학길에 나선 지 어언 한 달이 지났다.

인천 공항에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애써 괜찮은 척 웃어넘기며 출국 심사대로 나서던 그때로부터 정확히 한 달이 지났다.

내 앞에 가던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다른 남자 유학도는 울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와 포옹을 하고 아버지를 놓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마음속에서는 가족을 떠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터미널에 서서는 친구들의 전화를 많이도 받았다.

지금은 군대에 가버린 정환이, 군대에서도 친구를 위해 시간 내서 전화해준 태준이, 잘 도착하고 도착해서 만나자는 형들의 인사들, 모두 다 내 마음 한편에 소중히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덕분에 나는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드는 의구심, 불안감들을 이겨내고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흔히들 동기를 바깥에서 찾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동기를 바깥에서 찾아서 그걸 내적 동기로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보다 더 쉬운 동기부여는 이 세상에 없으리라 생각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변에 주어진 것들을 당연시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흔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 역시도 그렇게 살아왔다.

주어진 기회들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고, 주변에 있는 친구들, 가족들이 당연히 내 주변에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런 내 짧은 생각들을 바꾸게 만든 한 가지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군대에서 만난 초트 하사와 했던 대화이다.


필자와 초트 하사의 사진


늘 운동할 때 보면 초트 하사는 팔에 검은 팔찌를 하나 차고 있었다.

군인이고 미군들이랑 생활하면서 미군들이 하는 것들은 다 따라 해보고 싶었던 나는 천진하게 초트 하사를 보면서 '하사님, 그거 저도 한 번 착용해볼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순진한 소년을 바라보면서, 초트 하사는 자신의 파병 경험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보병 여단에 있었던 초트 하사는 중동에 파병됐었고 전투 인원으로 시가지 임무를 수행하러 나섰었다.

시가지 임무를 수행하던 당시, 초트 하사가 속해있었던 분대는 교전에 휘말렸었고, 그때 초트 하사는 자기 옆에 서있던 전우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어가던 모습을 자기 눈을 지켜봤었다고 한다.

이 팔찌는 그 친구를 기념하는 팔찌라며, 미안하지만 그렇게 해줄 수 없다고 말하며 나에게 초트 하사는 "Life is not guaranteed."라는 말을 해주었다.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삶도 보장된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께서 어린 소년을 23년 동안 키워주신 것 또한 보장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카투사에서 하고 있는 경험들, 유학 생활에서 하고 있는 경험들 모두 다 보장된 것이 아니다.

항상 감사하고, 그렇기에 더 열심히 내가 경험하고 임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 일이 있던 뒤로, 매일매일을 감사하게 살았다.

오늘도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어 행복하고 오늘도 두 눈으로 이 넓은 세상을 보고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이 일기를 마무리지으면 이제 또 오늘 하루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한국에서 나를 응원해주시는 부모님 생각을 하면 눈물이 또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슬픔의 눈물은 아니다.

감사할 줄 알기에 흘리는 눈물이고 부모님을 뵙고 싶은 마음에 흘리는 눈물이다.

박지성 선수는 초등학교 시절 본인의 일기장에 이런 말을 적었다고 한다.

'너무 많은 돈이 들었다. 꼭 축구 선수로 성공해서 부모님께 보답해야지.'

감사함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았던 탓일까?

박지성 선수는 모두가 인정하는 월드클래스 선수가 되었다.

지금이나마 늦지 않았으니, 우리 모두 감사함을 매일 가슴속에 새기며 그것을 동기로 삼아 오늘 하루도 더 열심히 살아나갔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미국이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