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소환한 'Life of Pi'

감상_page 1 : 조용한 아름다움

by ㄴㅏ름대로

"그래, 니가 호랑이렸다!"


가상의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작년엔 케데헌의 호랑이가 사랑을 받더니 올해는 왕사남의 호랑이가 욕받이를 맡았다. 영화는 천만을 뚫었는데 호랑이 CG가 그에 미치지 못하다는 아쉬움인 모양이다. 천만의 숫자에 나도 포함되어 있기에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겠다. 다만 영화에 대한 감상은 복합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니 인식엔 공감하지만 의견은 좀 다를 뿐이다. 왕사남의 호랑이는 저잣거리에서 횡포를 부리다 주인공에게 멋지게 제압당한 뒤 바로 사라지는 한 단역배우의 역할이었기에 그 외모와 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거랄까. 오히려 아쉬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비극이란 비극은 다 끌어안은 듯한 단종의 생애와, 그 비극을 꽁꽁 동여매 기어이 눈물샘까지 붙잡아 끌어올리는 배우들의 연기에 감동했었던 거였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세 영화



다만 오늘은 왕사남 얘길 하고자 함이 아니다. 호랑이 때문에 소환된 다른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나에게 있어 호랑이 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다. 파이 이야기로도 알려진 'Life of Pi'이다. 그 호랑이는 '리처드 파커'라는 자기만의 이름도 가지고 있었고, 영화 내내 주인공처럼 화면을 누비고 다녔던 존재였다. 어떤 의미에선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나,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실존 여부를 두고 영화 안팎으로 온갖 설왕설래를 만들기도 했던 호랑이였다. 그래서 영화의 이야기는 더 풍성해졌고, 여운은 더 길어졌다.


갑자기 호랑이(리처드 파커)가 그리워졌다.


오래간만에 추억의 앨범을 꺼내듯 이번엔 집에서 재생버튼을 누른다. 겨우내 잊고 지내던 파릇한 초록들이 봄날 다시금 올라오듯 예전의 감흥들이 새록새록 피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 영화였는데 이번에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감상_page 1.
조용한 아름다움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았다. 영화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물론 달라진 점은 있다. 첫사랑, 첫 외국 여행처럼 대부분의 경우 처음 경험했을 때의 강렬했던 이미지를 다음에 다시 넘어서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강렬하지 않다고 해서 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커피향처럼 더 차분하게 음미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니까. 특히 이 영화는 더욱 그렇다. 이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들은 "어때, 멋있지?" 하며 자태를 뽐내는 형태로 다가오지 않는다. 잔잔하게 펼쳐지는 장면들은 마치 수면에 비친 하늘처럼 감독의 생각과 우리의 마음을 가만히 모아내 다시 돌려주는 듯싶다. 여기에 일부 소개해본다.



이 영화는 동물원의 다양한 공간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인상적인 OST를 배경으로 여러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한 장면이 유독 시선을 끈다. 작은 도랑을 사이에 두고 하마와 돼지가 열심히 무엇인가를 먹고 있는 화면이다. 커다란 하마를 뒤쪽에 두어 사이즈가 비슷해지도록 맞췄다. 그래서인지 실제 시야에서는 앞뒤로 인식되어야 할 대상이 화면 구도상 마치 위아래로 놓여진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게다가 두 동물이 만들어내는 곡선이 은연중 화면에 리듬감을 불어넣는다. 먹이를 먹는 입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움직임이 없는 화면임에도 그림자와 밝은 지면의 대비, 그 환한 지면을 배경으로 다시 매끈하고 어두운 피부의 하마와 돼지가 온몸으로 만들어내는 리듬감 있는 자태는 의외의 매력을 발산한다. OST 담당자의 이름도 여기서 등장한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존재를 대비시키는 것은 이 영화의 메시지와 스토리 모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니 그 이상으로 이 영화의 구조적 뼈대이기도 하다. 동물원의 마지막 장면에서 리안 감독은 리처드 파커가 지나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물에 비친 모습으로 묘사하면서(물은 한편으로 주인공 파이를 의미하기에)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를 딱 호랑이가 지나가는 만큼만 보여주고 있다. 수면 위 넓게 펼쳐진 잎은 살짝 연꽃잎을 연상시키고 그 위에는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새가 한 마리 앉아 있다. 단지 색상이나 구도가 뛰어난 화면만이 감탄을 자아내진 않는다. 이렇게 의미와 긴밀하게 결합된 이미지는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풍기게 된다. 짧지만 영화의 핵심적인 내용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장면이라 볼 수 있다. 감독의 이름이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였다. 어두운 바다로 침몰하는 배와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밝은 불빛과 그걸 온몸으로 바라보고 있는 파이의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향연을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동시에 장면에 내재된 처절한 슬픔도 함께 전해지는, 아주 묘한 감정의 떨림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침몰하는 배에는 수많은 아우성이 울려 퍼지고 있을 것이나 감독은 그걸 침묵으로 바꾸고 오히려 가라앉는 불빛을 더 밝게 묘사하여 고통의 절규가 마치 우리를 바라보는 듯한 형태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그걸 온몸으로 받아내는 존재가 가운데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누구보다 절규하고 있을 파이였다. 뻗을 수 없는 손과 잡아줄 수 없는 손 사이에 만들어지는 깊은 애절함이 화면을 뚫고 나오듯 쏟아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수많은 이들과 사랑하는 가족이 배와 함께 침몰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파이가 있었다면, 이번엔 파이의 간절한 구조 외침에 아무도 대답하는 이 없는 끝모를 바다의 적막함만이 펼쳐져 있는 순간이다. 구름 사이 얼굴을 내민 태양은 마치 파이의 옆에서 빛나는 것처럼 보이며 그걸 담아내는 바다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허나 거기엔 동시에 갈 곳을 찾지 못한 구조의 희망과 신의 침묵만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잔잔한 바다는 아무런 대답이 없고 그 위엔 파이의 간절한 외침이 곧 사라질 작은 파문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종교의식의 숭고함은 때때로 아름다운 의식에 힘입을 때가 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우린 숭고함을 느끼는 순간을 아름답다고 여기기도 한다. 어두운 밤하늘 가냘프게 타오르는 촛불은 우리의 마음속 소원을 심지에 꼭 쥐고서 빛나는 존재가 된다. 바람과 물결에 흔들리는 만큼 우리의 염원은 간절해진다. 초가 인간의 상념을 담고서 강물 위를 흘러간다면 바닷속엔 파이의 상념을 담은 해파리들이 밝게 빛나고 있다. 손으로 바닷물을 휘젓는 그의 행동이 그래서 더 특별해진다.



역시 가슴 아린 장면 중 하나다. 연기가 두 곳에서 피어오르지만 하나는 가고 있는 자의 연기이고 하나는 가고자 하는 이의 연기이다. 날 알아봐달라는, 가고자 하는 이의 연기가 더 간절하게 흩날리고 더 붉고 강렬하게 피어오르지만 밝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는 배와 달리 홀로 남은 파이와 작은 구명정은 곧 어둠에 뒤덮일 운명에 놓인 것만 같다.



검푸른 바다 아래서 밝게 빛나던 해파리들을 바라보던 화면에서 갑자기 고래 한 마리가 솟구쳐 올라와 화면 밖으로 큰 원호를 그리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필름이 돌아가는 시점에선 당연히 물 밖으로 튀어오른 고래가 시선을 끌어가지만 마음을 사로잡은 장면은 오히려 바로 그 뒤에 이어지는 이 장면이었다. 수많은 상념(해파리)을 뚫고 올라온 고래가 일으킨 물보라가 남긴 흔적이 물음표로 보였던 것은 나만이었을까...



Life of Pi 중(편집)


이 외에도 인상적인 장면들은 여럿 있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단지 화면의 아름다움만은 아니다. 첫 번째 페이지일 뿐이다. 페이지의 제목은 '조용한 아름다움'이라고 붙였다. 다음엔 조금 더 이야기의 안으로 들어가서 감상을 나눠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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