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요즘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는 노래가 있다. 장기하의 신곡 <해>, <할 건지 말 건지>. 밴드 음악이 흥을 만들면서도 귀에 박히는 심플한 가사가 매력적이다.
했어? 할 거야? 하는 둥 마는 둥 할 거면은 하지 마. 한다. 해.
// 할 건지 말 건지 나도 몰라. 맞는지 틀린 지 물어보지 마.
장기하는 노래를 완성하고 나면 노래가 자기한테 말도 걸고 그렇게 노래와 관계가 시작된다고 했다. 이번 노래는 <가만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를 내고 봤더니 해보지 뭐 반항심이 들어서 <해>를 냈다가 <할 건지 말 건지>는 나도 모른다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의 생각의 흐름이 보이는 노래들. 장기하스러운 장기하의 세계관이다.
'절대 표절 시비 휘말릴 수 없는 가수 1위' 노래를 극찬하는 댓글들 사이에서 눈에 걸린 댓글이다. 장기하는 그 자체로 장르가 된 사람이다.
유튜브 웹 예능 <낮술의 기하핰>은 장기하라서 가능한 콘텐츠일지도 모른다. 장기하와 낮술의 만남.
자유로운 영혼에 꾸밈없을 것 같은 장기하가 유유자적하게 낮술을 한다.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콘셉트와 캐릭터. 여기에 장기하의 음악에 대한 소신, 소탈한 인생관을 들을 수 있는 건 다음 회차도 스며들듯 빠져들어 보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낮술의 기하핰>은 유튜브 호흡이라며 빠른 템포로 정보를 욱여넣은 콘텐츠, 오디오와 자막이 넘쳐나는 콘텐츠가 포화된 상황에 오히려 반대급부로 느긋함, 편안함으로 포지셔닝해서 살아남은 콘텐츠가 아닐까. 영상에는 '느긋', '고즈넉', '고요'해서 좋다는 댓글들이 유난히 많다. 술 그리고 전통주 유행의 흐름도 잘 탔고 여기 어때, 주류 회사, 주류 쇼핑 어플 등 브랜디드의 가능성까지 잡았다. 독창성은 물론 수익성까지 확보한 콘텐츠라는 생각.
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 전에 잘 만들어진 채널과 콘텐츠 레퍼런스를 찾는 중이다. 유튜브 채널을 만드는 것도 창업과 같아서 잘 되는 집은 어떤 것 때문에 잘 되는지, 분석하고 밴치마킹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덕분에 유튜브에서 하나의 장르가 된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슛뚜, 고몽, 영국남자. 이들은 브이로그, 영화 리뷰, 문화 콘텐츠의 모양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카테고리의 선두에서 시장을 리드하고 누군가가 찾는 레퍼런스가 된다. 이들은 자신이 만든 게 이 정도로 힘이 세지고 하나의 장르로 구축될지 예상했을까. 때로는 흔들리고 힘 빠지면서도 이것저것 실험해 보면서 단단해졌겠지.
셋. 개성이 뚜렷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게 선명한 사람들을 보면 멋지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섬 속의 섬 가파도의 순수한 아이들.
지난 휴가 때 가파도에서 우연히 전시공간에 들어갔는데, 7명의 가파 초등학교 아이들이 사진으로 꾸민 공간이었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찍은 가파도의 모습. 사진에는 시리게 투명한 바닷물도 있고, 더운 여름날에 바다에서 수영하는 모습, 놀면서 잡은 전복도 있었다. 가파도에서의 경험으로 성장한 아이들이 얼마나 멋진 고유성을 가지고 있을지 기대되기도 부럽기도 했다.
가파 초등학교 아이들은 졸업하면 가파도를 떠나 제주도에 있는 중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생활을 거치며 도시로, 도시로 복잡한 곳에 빈틈을 파고 들어가겠지. 아이들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거칠고 거대한 무언가, '표준'이라고 정해놓은 기준에 눌릴 때도 있겠지만, 부디 그 소중한 고유성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자꾸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