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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아람 May 29. 2023

유튜브 EO, <달과 6펜스>와 단상

유튜브 EO 미국변호사 존청 편 캡처


요즘엔 일이든 취미든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그 이야기를 할 때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들이 빛나 보이는데, 유튜브 채널 EO의 미국변호사 존청 영상을 보는 내내 기분 좋은 에너지를 느꼈다. 그는 일을 좋아하고 있었고, 영상 내내 자신감이 충만했다. “자신감은 본인이 얼마나 실체가 있는지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라고 했는데, 그의 자신감은 자신의 콘텐츠를 채우기 위해 노력해서 만든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출처 예스 24)


비슷한 결로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가 흥미로운 캐릭터였는데, 런던의 증권거래소 중개인으로 일하던 스트릭랜드는 어떤 강력한 욕구에 이끌려 그림을 그리러 떠난다. 가족에게 배려 없는 결단이라던가, 여성들을 수동적인 인물로 설정한 것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둘째치고, 스트릭랜드가 품게 된 욕구,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단단한 확신을 지니게 된 것은 참 행운이다. 그 감각을 알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은 마음으로 읽었다.


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소. 그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사람이 물에 빠지면 헤엄을 잘 치느냐 못 치느냐는 문제가 아니오. 물 밖으로 빠져나와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게 되는 것이오.
<달과 6펜스> 73p
나는 그 순간 그에게서 어렴풋이 보았다. 육체에 얽혀있는 존재가 품기에는 너무나도 위대한 무언가를 향해 뜨겁게 타오르는, 고뇌하는 영혼을.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내 눈에 포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낱 내 앞에 남루한 옷을 걸치고 서 있는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껍질일 뿐이며, 따라서 나 자신이 육체를 벗어난 한 영혼 앞에 서 있는 듯한 이상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좋아요. 가서 당신 그림을 봅시다.” <달과 6펜스> 235p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라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내 상태가 어떤지 자신의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은 부지런히 해야겠지만 어떤 강력한 욕구는 혼자만의 힘으로 생기기보단 내가 서있는 환경, 조력자 혹은 동료 그리고 타이밍까지 맞아야 발현되거나 신나게 실현해 낼 수 있다고 요즘 생각한다. 스트릭랜드도 본인도 거스를 수 없는 마음의 소리를 따라 다 털어버리고 홀로 떠났지만 오랜 방황 끝에 타히티에 도달해서야 명성을 안겨준 작품을 그릴 수 있지 않았는가.


기교와의 싸움으로 끊임없이 괴로워해온 스트릭랜드는 어쩌면 다른 예술가들보다 마음의 눈으로 본 환상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타히티에서는 모든 환경이 그와 잘 맞아 영감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사건들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덕분에 그의 후기 작품들을 보면 적어도 그가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마치 육체를 떠난 그의 영혼이 거처할 새 집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한 끝에 머나먼 이 외지에 이르러 드디어 자신이 들어가야 할 육체를 찾은 것 같았다.
<달과 6펜스> 254p


스트릭랜드처럼 현실감각을 내팽개치고 달만 쫓는 삶을 살 수는 없으니 물살 따라 노질을 하면서 나에게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순간을 위해 총알을 미리 준비해 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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