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의 입구를 찾아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식물카페, 온정' -

by 혁이아빠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다시 출근을 시작했지만, 퇴근 후 돌아갈 곳은 집뿐이었다. 마침 전주국제영화제가 개최되어 다행이었다. 아직은 비대면 시대였지만, 축제를 이어가려는 방편으로 집에서도 참가작들을 관람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다닐 기력도, 만날 사람도 없이 집에 갇힌 내겐 소중한 창이었다. 관람할 작품은 아내가 골랐다. '식물카페, 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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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닮아 말수가 적은 카페 주인. 전에는 종군사진기자로 일했지만, 전쟁의 경험이 각인한 트라우마로 사진기를 들 수 없게 되었다. 식물로 가득한 카페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그가 새롭게 일군 삶터였다.

전쟁의 악몽 속에서 그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수목원 기억을 붙들었을 것이다. 수목원을 가득 채운 잎과 줄기들이 제각각의 빛과 결로 빛나며 말을 걸어와 함께 교감했던 그 날. 전쟁 중 폭탄 세례로 무너진 건물 더미 속 작은 틈이 지난 삶의 출구였듯, 그날의 기억은 새로운 삶의 입구가 되어 식물카페까지 이어진 듯했다.


나를 끝없이 좀먹어 들어가는 이놈의 직장을 때려치우면서 시원하게 내뱉는 한마디가 떠오른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이렇게 외치며 사직서를 던지고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이야기가 요즘 참 흔하다. 흔해서 식상하다는 게 아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꼰대력 높은 생각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흔한 그 이야기들이 자신이 바쳤던 젊은 시간의 한 토막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 같아 좀 불편하게 느껴졌을 따름이다.


카페 주인은 카메라를 들고 전장을 누볐던 과거를 부인하지 않았다. 문득 찾아온 후배의 회상 속에 그려진 그는 사진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진은 치열했고 날카로웠다. 이제는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가 사랑했던 사진들은 여전히 식물카페의 벽을 장식하고 있다.


드문드문 식물카페를 오가는 손님들 틈바구니에 나도 끼어 들어가 본다. 20, 30대의 젊었던 시간을 들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입구를 서성이고 있다. 14년 직장생활, 인내 끝에 얻은 보상은 암이었다. 베짱이처럼 살지 않은 후회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스스로가 바보같고 안쓰러워 한참을 운다.


참 불행했다고 토로하는 중년의 사내에게 주인은 차 한잔을 권하고는 분갈이를 한다. 새로운 화분에 넣고 흙을 담는다. 나를 좀먹었을 뿐이라고 믿었던 그 시간에 대한 기억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저 견뎌야만 했던 치욕스럽고 버거웠던 순간들이 치열하고 날카롭게 채색되어 벽에 걸렸다.


내게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대신 영화는 묻는다. 온통 녹색으로 엉겨있던 식물들이 제각각의 결과 빛으로 반짝이며 인사하던 순간, 너에겐 그게 언제였는지.


항암제가 퍼지는지 하품이 나오며 졸리기 시작한다. 꿈속에서 과거의 내 방으로 돌아가 반짝이던 것들을 뒤져봐야겠다.

(2021.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