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탈주의 아슬아슬함에 대하여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열아홉'

by 혁이아빠

두 번째 작품은 우경희 감독의 첫 장편 '열아홉'. 지금은 민법상 성년이 열아홉이 되었지만, 싸이월드 비밀방명록에 속내를 전하던 당시는 2008년. 열아홉은 미성년이었다. 성년을 앞둔 경계의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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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부모의 굴레를 벗어나 내 집을 갖고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은 원심력에 열아홉 소녀의 몸과 가슴은 요동친다. 하지만 보호자의 허락 없이는 원룸 하나도 계약할 수 없는 나이. 법과 제도는 강한 구심력으로 그녀를 집안에 묶어두는 말뚝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녀를 둘러싼 힘의 방향은 정반대로 바뀐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지긋지긋한 임대아파트, 이젠 내쫓길 신세다. 길바닥은 지옥이다. 무조건 버텨야 산다. 하늘로 날아오를 궁리를 하던 머리에는 낭떠러지로 떠밀리지 않기 위한 무시무시한 상상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북극과 남극이 뒤바뀌어 전도된 자장 속에서, 더 넓은 세상으로 분갈이를 염원하던 소녀는 지금 이곳에서나마 뿌리 뽑히지 않기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어느 날 갑자기 안과 밖이 뒤집힌 세상에서 그녀의 열아홉이 설 수 있는 공간은 위태로운 경계의 담벼락 위뿐이다. 그녀를 둘러싼 제도와 사람들은 도와줄 수도, 끌어내릴 수도 있다. 찾아오는 사회복지사도, 옆집 할머니도.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어머니의 죽음이 알려지면 자신은 쫓겨난다. 일단 문을 걸어 잠그고 납작 엎드린다. 이 불안하기 짝이 없는 탈주극도 딱 열아홉까지만이다. 저기 잡힐듯한 스무 살까지 들키지 않고 버티면 그녀는 자유다.


경계 안에서 안온하게 살아온 삶은 베일 듯한 날카로운 경계 위를 밟으며 탈주하려는 삶이 주는 불안을 이해하기 어렵다. 순간 하늘과 땅이 뒤바뀌고, 도움을 주던 손길은 나를 내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알아채지도 못하고 넘어가는 열아홉의 경계가, 그 소녀에게는 타야 할 외줄이고 작두다.

그 스물에 스물을 더해 마흔이 되는 나이에 암이라는 경계가 다시 그어졌다. 좌우는 낭떠러지. 탈주의 길은 그 경계선뿐이다. 몸에 넣고 있는 항암제는 암세포도 죽이지만 정상세포도 죽인다. 그 무서운 죽음의 힘 가운데에 희미하게 내 살길이 그어져 있다.


살기 위해 일하지만, 조금만 무리하면 암은 재발하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할 수 있다. 일하되 무리하지 않는 형용모순에 가까운 균형을 잡아가며 몇 년을 버텨야 할까. 이렇게 5년만 지나가면 저 끝에는 완치가 있을까. 걱정 없는 일상이 열릴까.


그녀는 커서 음악을 하고 싶었다. 마치 동화 속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럼, 그녀는 음악을 붙들고 그 위태로운 수평의 외줄 위를 수직으로 탈출한다. 쳐냈던 손들을 다시 붙들며 그녀는 사회의 씨줄과 날줄 위에 안착할 것이고, 마침내 창과 문이 달린 자기만의 방을 가진 스무 살이 될 것이다.


꿈을 품고 탈주를 감행하는 열아홉 그녀, 꿈을 살다 이제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새겨넣고 해골을 품에 안은 채 희미한 경계를 따라 걸어가야 하는 마흔의 나, 서로의 탈주선 위에 그려진 교차로 위에서 우리는 서로 만났다.


(2021.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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