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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일기8> 뛰지마세요

by 혁이아빠

부정맥이 있습니다. 심장내과 앞에서 잘 들리지 않는 어머니 대신 내가 말했다. 네, 어떤 부정맥이요? 이런, 부정맥에도 하위분류가 있구나. 어머니께 여쭈어본다. 그제사 보청기를 꺼내신다. 모르신단다.



심방세동입니다. 알고 계셔야 해요. 판막이 딴딴하게 닫히는 게 아니라 조금씩 샌다는 의미입니다.



부끄러웠다. 보호자랍시고, 아들이랍시고 있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무관심하냐는 질책 같았다. 뒤늦게 어머니의 가방 안에 꽂혀 있는 진료기록 사본을 꺼내본다.



일단 드시는 약. 아스피린도 수술 일주일 전부터 끊으셔야 하고요. 간 수치가 좀 있어서 우루사를 드시고 수술 오시기 전에 혈액검사 한 번 더 해서 가져오세요.



신경외과를 거쳐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를 한 번 더 했다. 뇌에 있는 꽈리도 문제없단다. 수술할 수 있단다. 뒤늦게 어머니의 몸 구석구석이 궁금했다. 골다공증이며 연골주사며, 다행히 수술과 관련된 건 없지만 걱정이 앞선다.



그간 건강하게, 안 들리는 만큼 크게 외치며 활기차게 언제나 거기 계실 줄 알았던 어머니는 간데없고, 구멍 뚫린 뼈에 의지해 겨우 버티고 있는 노인만 서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보인다. 지하철에서 계단을 오르고는 숨을 헐떡이셨던 어머니가 다시 뛰려고 하신다. 놓칠까 봐. 어머니, 버스는 사람 다 채우면 떠나요. 그리고 바로 다음 차가 옵니다.



절대 뛰지 마세요. 그동안 급하게 사시느라 애쓰셨어요. 앞으로 엄마에게 큰일 없을 거예요. 쫓아오는 사람 없을 테니 꼭 천천히 걸으세요.


(202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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