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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일기7> 가슴을 쫙 펴라

by 혁이아빠

오늘은 유난히 필라테스 강사님이 내 주위를 서성이는 느낌이다. 와서 가슴 열고~그렇죠. 가슴 열고~ '기억하세요'. 새로 오신 분이라 동작이 서툰 학생에게 마음이 쓰이셨나 보다. 하긴 생각해 보니 전에 계시던 분은 더했다. 내 양어깨를 잡고 척추에 니킥을 날리면서 폈다.



내 가슴둘레는 큰 편이다. 떡 벌어진 어깨에 가슴이 넓으면 옷맵시도 그럴싸하겠건만, 마라도나 체형이다. 앞뒤가 두껍다. 이른바 '앞이가 옆이가'. 그래서 평소엔 내장들 입장에서 행복하지 않겠냐며 자랑했었다. 들어앉을 공간이 넓으니까.



한데 모니터 앞에 죽치고 산 시간이 누적되어서인지, 어깨도 말려있고 가슴도 굽었다. 내장들이 차지해야 할 공간도 좁아졌을게다. 숨도 마음껏 들이마시지 못했을 것이고, 혈류도 원활할리 없었겠다. 굽은 자세로 척추 부담이 늘어난 것도 자연스런 수순. 암을 발견하기 직전엔 허리에 압박밴드를 둘러야 겨우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수술을 하고 2년이 다 지나가는데, 왜 여전히 가슴이 굽어지고 닫혀있나 곰곰이 생각해 본다. 왜 아직 정신을 못 차렸는가 싶어 자신에게 질타를 하다가 정신의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당당하지 못한가? 떳떳하지 못한가? 부끄러운 구석이 있는가? 주눅이 들어 있는 것인가?



내 존재 자체를 무언가 실례라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자리건 차지하고 앉으려면 민폐이니 가급적 면적을 줄여야 한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아니 뭐 그냥 무심코 던져진 것이라도 상관없다, 일단 존재하는 이상 내 자리를 주장할 권리가 있다. 그만 좀 수그리자 혁이아빠야.



반복되는 복근 강화 동작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수강생들에게 강사님이 시원한 비법 크림을 발라준다. 릴랙스.



느낌이 좋아 어떤 제품이냐고 물어보니 감기 걸린 어린이들의 코를 유칼립투스 성분의 화한 기운으로 뻥 뚫어주는 제품이다. 구매하려 검색해 보니 코알라의 나라 호주에서 해외 직구해야 한단다. 풀네임을 보니 어라?



'chest rub' 가슴에 바르는 것이다. 옳거니, 이걸 가슴에 바르고 다녀야겠다. 잊을만하면 냄새에 가슴 쫙 펴지게 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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