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어가다가 커피숍을 한번 쳐다본다. 왠지 커피 한잔을 사들고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나 시간이 애매할 때에는 커피숍을 들려야 할 것 같다. 혼자 멀뚱멀뚱 약속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다 커피 한잔 사들고 홀짝홀짝 마시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 왠지 마음이 편하다. 이것은 커피가 나에게 주는 위안이며 안정감이다. 또한 달달한 커피 한잔의 행복이리라.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그 달달함 때문에 몸이 상하고 있다. 바닐라라테 한잔 안 마셨다고 고혈압이 전단계에서 정상수치로 회복을 했으니 더 이상 마시면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커피숍에 들어가서 아무거나 사 먹고 싶지도 않다. 내가 좋아하는 건 쓰디쓴 커피가 아니라 달달한 라테이므로. 이상하게 다른 음료를 먹는 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무슨 소비패턴인지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뇌가 그렇게 반응을 하므로 시키는 대로 한다. 바닐라라테를 사 먹지 못하는 나는 결국 커피숍을 그냥 지나친다. 우울한 마음으로.
결국 또 인터넷을 뒤적인다. 몇 년 전에 커피머신을 샀다는 지인에게 연락을 해본다. 아직도 커피머신을 잘 쓰고 있는지 어떤 제품을 샀는지 물어본다. 집에서 원두를 바로 갈아 내려먹는 커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지금껏 제일 잘 산 것 중에 하나가 커피머신이라며 특히 저가형 커피숍의 커피는 비교도 안된다고 나를 유혹한다. 달달한 커피도 못 먹는 이 상황에 신선하고 향긋한 커피를 마셔보고 싶은 마음이 충동적이다. 스멀스멀 구입욕구가 솟구친다.
<커피의 효능>
-남플로리다대학 연구팀이 커피 속에 든 아직 확인되지 않은 성분이 알츠하이머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커피에 있는 항암 성분이 암, 동맥 경화를 예방하고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
-스위스의 커피과학정보연구소(ISIC: Institute for Scientific Information on Coffee)는 하루에 커피를 3∼5잔 마시면 알츠하이머 치매 위험을 최고 2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 하버드 대학 보건 대학원 연구팀이 여성 6만 7000명, 남성 5만 명을 대상으로 20여 년에 걸쳐 실시한 조사 분석 결과 커피를 하루 4~6잔 마시면 자궁내막암과 전립선암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한 잔의 커피에는 노화예방 및 세포산화 방지에 좋은 항산화 성분이 가득하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오렌지 주스보다 더 많은 수용성 식이섬유질이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또한 장 건강에 유익한 유산균(비피도박테리아)의 활성화를 시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스 아테네대학교 연구팀이 고혈압 환자 485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하루의 한잔의 커피를 꾸준히 마시는 사람들의 경우 혈관의 탄력성이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혈압 환자는 혈관이 잘 경직돼 탄력이 떨어지고 심장병과 뇌졸중의 원인이 되는데 이것을 방지해 주는 것이다. 또한 하버드 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커피를 마시면 당뇨병 위험이 남성은 50%, 여성은 30% 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강릉원주대학교 연구팀이 하루 평균 2잔 ~ 5잔 사이의 커피를 마실 경우, 세포 증식과 면역력, 세포 방어, 항산화 신호 등에 유익한 단백질이 나타난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연구팀은 실험을 위해 투석시킨 커피 샘플과 카페인, 클로로제닌 산 성분만을 이용한 인공적 커피 샘플을 각각 준비해서 실험한 결과, 투석된 커피 샘플을 마실 경우 세포증식, 면역력 향상, 세포 방어, 항산화 신호와 뼈 발상에 관여하는 단백질 표현에 좋은 반응이 나타났다. 단, 연구팀은 5잔을 초과한 10잔에서는 효능이 떨어졌다며, 과용하지 않을 것을 권고했다.
-출처:위키백과
또다시 귀가 팔랑거린다. 이렇게 건강에 좋은 커피를 안 먹을 수 없지 않은가. 특히 요즘 최대 관심사인 고혈압에도 좋다고 하니 커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저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달달한 라테만을 먹어왔는데 이젠 생각을 바꿔야 할 때다. 달달함을 뺀 커피의 맛을 즐겨보자. 내 입맛에 맞는 향긋하고 신선한 커피를 마신다면 달달한 라테의 미련은 금세 사그라질지도 모른다.
곧바로 검색에 들어간다. 집에 있는 캡슐커피머신보다 6배 이상은 줘야 한다. 비싸다. 굳이 사야 할까 조금 망설여진다.하루 한잔 커피를 위해 고가의 커피머신을 사는 게 맞을까, 한잔밖에 먹질 못하므로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게 맞을까.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우기 시작한다. 어떤 게 천사고 어떤 게 악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 가지 생각이 자꾸 교차된다. 어렵다. 우유부단한 성격이 원망스럽다. 신중한 것이라고 해두자. 원하는 드롱기 커피머신을 장바구니에 넣어 두고 생각해 본다.
일주일이 지났다. 나의 결론은 구입이다. 마음을 먹고 나니 주문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구매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진짜 맛있는 커피를 먹어보고 싶어서다. 지인의 칭찬일색인 커피맛이 너무 궁금하다. 커피머신을 사지 않으면 먹어볼 수 없는 그 커피는 어떤 맛일까. 집안에 향긋한 커피 향이 폴폴 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드롱기가 도착했다. 다행히 생각보다 엄청 거대하진 않았다. 주방용품으로 가득 차 복작복작한 주방이지만 커피머신하나 올리기엔 충분할 듯하다. 꽤나 있어 보이는 외관에 조금 설렌다. 'VIP CLUB'이라고 적혀있는 자그마한 상자는 나를 좀 더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상자 안을 열어보니 멤버십카드와 함께 가죽카드지갑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은 커피머신을 구입한 설렘에 작은 기쁨을 더해주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용설명서부터 펼쳐본다. 좀 불친절하다. 요즘 나름 열심히 책 읽고 글 쓰는 나인데, 사용설명서가 복잡하고 이해가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읽기 싫게 설명이 되어있다. 우선 드롱기를 주방 한편에 배치해 두고 인터넷을 검색해 본다. 막바로 커피를 내려먹기엔 조금 찜찜하니 세척방법을 찾아본다. 하라는 데로 하는데도 뭔가 잘 안 되는 느낌이다. 이것저것 눌러보다 물 두 통을 다 비웠다. 이 정도면 세척은 됐겠지.
사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물통에 물을 채워놓고 윗뚜껑을 열어 원두를 넣은 후 전원버튼을 눌렀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조금의 물이 나온다. 커피 내리기 전에 세척이 되는 거라고 한다. 세척물은 갖다 버리고 원하는 커피버튼을 누른다. 굉음을 내며 원두가 갈리고 곧바로 커피가 나왔다. 커피 향이 좋다. 커피맛은 쏘쏘(so so)다. 아무래도 마트에서 급하게 산 원두라 그런 모양이다. 원두굵기, 커피농도 조절을 한번 해봐야겠다.
카페라테를 만들어보자. 컵에 우유를 반쯤 넣고 우유스팀을 눌러본다. '으악, 깜짝이야' 너무 시끄럽다. 원두 가는 소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3분 이상 스팀기를 돌리지 말라고 되어있다. 불안한 마음에 잠깐 했다가 끄기를 서너 번 반복했더니 우유가 뜨거워졌다. 생각보다 거품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맛을 보니 미세한 거품들이 촘촘하게 얽혀있어 부드럽다. 우유에 에스프레소 한잔 내려본다. 싱겁다. 한잔 더 내려본다. 그래도 맛없다. 양조절에 실패인듯하다. 초보라 어쩔 수 없다. 검색을 해본다. 우유는 너무 뜨겁게 데우면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65도 정도의 온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약 1~2분 정도로도 충분히 우유를 데울 수 있을 것 같다. 다음번엔 제대로 해보리라 다짐해 보지만 왠지 귀찮아서 잘 안 해 먹을 듯하다.
대낮부터 한 커피머신의 언박싱은 3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커피머신의 버튼을 눌러 전원을 끈다. 또다시 기계음이 들리더니 세척물이 나온다. 따로 세척을 하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 이래서 전자동을 사는구나. 새삼 편리함에 감동을 한다. 4시가 다되어간다. 3시 이후에 먹는 커피는 날 밤새우게 한다. 결국 먹지 못하는 커피는 다 버렸다. 이거 하나 했다고 이렇게 힘들 일인가. 휴.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고 하지 않던가. 드롱기로 커피 내려마시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은 것은 없겠지. 달달한 라테보다 건강한 원두커피를 선택한 것은 잘한 일 일테다. 달달함이 아닌 향긋함으로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종일 커피를 내려서 인지 드롱기는 사용한 첫날부터 커피 찌꺼기를 빼달라고 깜박인다. 한가득 나온 커피찌꺼기를 봉투에 담아 건조하는데 집안에 커피 향으로 가득 찬다. 이 조차도 마음에 평안을 주는듯하다. 아직 나에게 맞는 커피맛을 찾진 못했지만 이미 마음은 평화롭다. 천천히 입맛에 맞는 커피맛을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테지. 아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