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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Mar 23. 2023

남편의 취미, 물생활

슬기로운 물생활 1

노담배, 노알코올인 남편의 유일한 취미가 하나 있다. 그건 ‘물생활’이다. 그 시작은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하는데 출구 쪽 한편에 있는 작은 매점에서 일회용 커피컵에 구피 두 마리를 넣어 팔고 있었다. 그때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혼자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고, 혼자 사는 게 외로워 보여 가벼운 마음으로 구피를 선물해 줬다. 그런데 그 구피가 번식력이 너무 좋았다. 어쩌다 보니 어항도 커졌고, 새끼도 너무 많아져 친구네, 우리 집까지 분양을 해주었다. 그때부터 남편은 열대어를 키우기 시작했다. 키우다가 다 죽으면 안 키우고, 또 생각나면 키우고를 반복하였는데 족히 18여 년은 된듯하다.


결혼 한 뒤로 35센티짜리 어항하나에 시클리드 물고기를 키웠다. 여러 마리를 한참 동안 잘 키웠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마리씩 죽었고, 마지막 한 마리가 새벽에 갑자기 물 위로 점프해서 죽었다. 왜 점프를 해서 바닥에 죽어있었는지 아직까지 원인은 모른다. 죽은 물고기를 버리고, 이제 어항을 처분하자고 했지만 남편은 끝끝내 물고기를 더 산다고 했다. 결국 아이들과 함께 수족관에 가서 어항을 하나 더 사서 세팅하고, 거북이까지 사서 키우게 됐다. 이제 어항이 두 개다. 어항 두 개를 놓을 축양장도 샀다. 그런데도 매일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곁눈질하며 확인해 보니 수초를 장바구니에 넣고 있다.

“수초는 또 왜? 거북이 하나, 시클리드 하나 해서 어항 두 개나 있잖아.”

“수초 키우고 싶어서. 어항하나 작은 거 더 살까 생각 중이야.”

“뭐라고? 안돼. 그만 사!”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하고 있는 남편을 보니 답답하다. 집이 넓은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사려고만 하는 걸까. 이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놓을 자리도 없는데 말이다.


며칠을 계속 택배만 오기를 기다린다. 20센티 정도 되는 어항이 도착했다. 그다음엔 수초가 아이스박스에 담겨 왔다. 흰색, 검은색의 모래와 돌멩이가 온다. 나뭇가지도 여러 개다. 살다 살다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돈 주고 사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어항을 꾸미려면 있어야 한단다. 필요하다고 하는데 머라고 할 말이 없다. 택배를 하나씩 받을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남편을 보니 그냥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기대에 찬 얼굴로 행복해하는데 기분을 망칠 수는 없다.


주말에는 온 가족이 수족관으로 향했다. 수초와 함께 키울 물고기를 더 사야겠다는 남편을 누가 말리겠는가. 아이들도 신이 났다. 아이들은 거북이부터 본다.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다가가보니 30여 마리쯤 돼 보이는 거북이를 보며 귀엽다는 말을 연신 내뱉는다. 내 눈에는 너무 많아 좀 징그럽다. 거북이를 외면하고 좀 저렴하고 키우기 쉬운 물고기를 찾아 다른 곳을 서성거렸다. 아이들과 함께 네온테트라, 라스보라 헹겔리라는 열대어를 열 마리쯤 골랐다. 오토싱도 두 마리 구입했다. 남편은 사고 싶은 열대어가 있나 보다. 직원에게 머라고 말을 하더니 지하로 내려간다. 하얗고 지느러미가 예쁜 브리샤르디 열대어 한쌍을 담아왔다. 둘째 아이는 아빠가 생일선물을 안 사줬다며 계속 거북이 한 마리를 더 사달라고 졸랐다. 거북이는 크면 10센티 이상 자라기 때문에 어항이 비좁아서 두 마리는 키울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고민 끝에 빨갛고 풍성한 지느러미를 가진 알풀구피 한쌍을 구입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들뜬 마음으로 계속 열대어 이야기를 하며 한시도 쉬지 않고 주절거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담아놓은 어항에 열대어들을 봉지채 그대로 넣어 적응을 시켜준다. 몇 시간이 지나고 어항에 열대어들을 모두 조심스럽게 한 마리씩 넣어주었다. 아이들도 신기한지 아빠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이야기꽃을 피운다. 우리 집에 온 열대어들을 모른 채 할 수 없기에 퉁명스러운 말투와는 달리 내 시선은 어항의 열대어에 향해있었다. 새로운 곳에 와서 적응하느라 이리저리 헤엄치는 모습이 신기하고 예뻤다. 네온테트라와 라스보라 헹겔리는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이 신기했고, 알풀구피 한쌍은 색이 화려해서 예뻤다. 환경이 다른 브리샤르디 한쌍은 작은 어항에 담아주었다. 겁이 많은지 조금만 놀라도 계속 숨었다.


갑자기 열대어 식구들이 늘었다. 일주일에 두 번 물갈이해 주는 것이 귀찮을 법도 한데 남편은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 그런지 말은 귀찮다고 해도 열심히 빠뜨리지 않고 물을 갈아주었다. 어항을 없애라고 한 나는 하루에 두세 번씩 어항 앞에 앉아 물멍을 때리기도 하고 물고기밥을 주기도 했다. 어항 앞에서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데 잡생각이 없어지고 힐링이 되는듯한 느낌이었다. 이래서 물생활을 즐기는 것인가 싶다. 오늘따라 유난히 열대어들이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아무래도 나도 남편 따라 물생활에 빠져들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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