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밤인가. 창밖 가로등 불빛 때문에 방에 놓인 가구들의 실루엣이 제법 뚜렷하다. 선반에 놓인 탁상시계가 3시 35분을 가리키고 있다. 다시 잠을 청해볼까 망설이다가 요의가 느껴져 방문을 열고 나오니 주방 냉장고의 진동음이 고요함을 뚫고 귀에 와닿는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새벽에 일어났다. 큰딸로서 아궁이에 불을 때는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불을 피우는 동안 어머니는 대가족의 아침식사 재료를 준비했다. 커다란 가마솥에 보리밥을 앉히고 감자를 찌고, 같은 솥에 야채도 찌고 또 한켠에는 된장도 지졌다. 그녀는 입김이 폴폴 나는 한겨울의 깜깜한 새벽녘에도 싫은 기색 한 번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때마다 곁에는 두 살, 세 살 터울의 여동생들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10년 뒤 그녀는 부산에 살았고 여전히 일찍 일어났다. 남동생의 도시락을 싸야 했고 그녀도 서둘러 밥 한 술 뜨고 출근해야 했으므로. 결혼 후에도 동이 틀 즈음 일어나 남편이 먹을 도시락을 싸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이제는 꼭두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지 않아도 되는데 아침잠이 더 줄었다.
*
날이 밝으면 나갈 채비를 한다. 건조해서 까끌거리는 맨발을 헐렁한 운동화에 집어넣는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공원이 있다. 두 개의 언덕 아래를 8자를 그리며 걸을 수 있게 보도가 조성된 이 공원을 그녀는 매일 아침 다섯 바퀴 돈다. 주변이 논밭이라 시골의 정취가 공원에까지 스며있다. 이름 모를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청량하다. 매일 걷는 길이지만 그녀는 주의를 살펴서 걷는다. 풀이 우거진 곳에는 뱀이 출몰하기 때문이다. 소리 없이 미끄러지는 긴 몸통을 볼 때마다 늘 처음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란다.
얼마 걷지 않아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같은 시간대에 공원을 걷는 습관을 가진 이웃들이다. 거의 매일을 만나는 그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매일 같은 인사말을 건넨다. 몇 달간 보이지 않던 중년 여자가 오늘 오랜만에 공원에 나왔다. 내심 반갑지만 “안녕하세요”를 넘어선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그녀는 설거지를 막 마쳤다. 다시 한번 공원을 찾는다. 저녁 시간에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주로 눈에 띈다. 그녀는 개를 자식 키우듯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미국 사는 딸도 강아지를 키운다고 하니 대세를 부정할 수도 없다.
날이 어두워지니 뇌로 흘러들어오는 시각 정보가 줄어든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기억들이 두서없이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엄마를 졸라서 어렵게 싸 온 도시락을 국민학교 교실에서 열었을 때, 꽁보리밥에 무말랭이 반찬 하나가 전부인 것에 실망했던 일이 떠오른다. 읍내 작은집에 갔다가 작은 아버지를 따라 처음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도 난다. 작은 아버지와 극장이라니 괜히 부끄러웠다. 첫 손녀인 자신을 무척 예뻐해 주셨던, 그녀가 7살 때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도 난다. 좀 더 사셨으면 어린 그녀가 집안일을 돕느라 학교를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늘따라 작은 어머니, 고모도 한 분 한 분 생각이 난다. 유년기의 그녀를 따뜻이 대해주셨던 분들이다. 모두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사느라 바빠 장례식에도 가보지 못한 게 죄스럽다. 어렸던 그녀가 이제 기억 속 할머니보다도 오래 살아 교통비와 공공시설 이용 경로할인을 받게 되었다.
다섯 바퀴를 다 돌았다. 밤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꽤 많이 걸어 오늘 밤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