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또래 많은 여성이 그랬듯 그녀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는 다짐을 마음에 품고 성인이 되었다. 그녀가 그 마음을 먹고 생각을 굳히기까지 열성적으로 지지해 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엄마였다. 딸이 자기처럼 살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이가 10대를 보내는 동안 집안일을 일절 시키지 않았다. 여자는 결혼을 해도 직장이 있어야 한다고, 딸 앞에서 독백을 가장한 지시어를 무심한 듯 뱉어내고는 했다. 행여나 딸이 잊지 않을까, 다른 한편 잔소리로 듣지는 않을까 고르고 골라서, 충분한 시간 간격을 두고 꺼낸 말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결심은 무색했다. 그녀는 엄마처럼 결혼을 했고, 엄마처럼 아이 둘을 낳았다. 열의를 갖고 다니던 직장을 둘째를 임신하면서 그만두었다. 그녀는 짜증을 자주 냈고 눈물 흘리는 날이 많아졌다. 인공지능까지 등장한 세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영영 찾지 못할 것 같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과거의 결심 속에는 엄마의 삶을 하찮은 것으로 보는 마음이 들어있었다. 곧 알게 되었다. 엄마의 삶이 별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삶이 그보다 나아지기 어렵다는 것을.
이제 노인이 된 엄마는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준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할머니들도 그렇다.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삶은 드라마보다 극적이다. 우리에게는 매 순간 펼쳐지는 일을 경험하는 자아가 있고, 그 경험을 해석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보는 기억 자아가 있다. 우리는 갖고 있는 기억을 모아 죽는 날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써낸다. 인생의 마지막을 향하는 길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이야기를 완결 짓는 그 과정이 혼자만의 일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소리꾼 곁에서 고수가 응당 추임새를 넣듯이, 옆에서 응원할 수 있다면, 함께 완성할 수 있다면.
어느 틈에 그녀는 곧 세상을 떠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이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구술생애사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