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정신을 차리니 어디선가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화재경보기구나, 나가야 하는구나.’
핸드폰만 챙겨서 첫째를 깨우고 둘째를 안았다. 아무 신발이나 신고 현관문을 여니 복도가 연기로 차 있고, 불쾌한 냄새가 났다. 눈물을 터뜨리는 둘째를 달래 가며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바깥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보이고,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려 날 깨워준 이웃도 보였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빠지고 화장실 생각도 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나는 잠옷 바람이고 둘째는 기저귀 차림, 하의실종 상태였다. 밖에 나온 이상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림 뿐이었다.
30분쯤 뒤 껐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하 보일러실에서 불이 난 거였다고 한다. 빨리 꺼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건물 안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열쇠를 집에 놓고 나왔다는 걸. 생각해 보니 잠옷을 입고 있는 사람도 나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적어도 겉옷으로 볼 수 있는 티와 바지를 입고 있었고 무엇보다 열쇠도 잊지 않고 챙겨 온 모양이었다. 이 와중에 다들 어찌 이토록 철두철미하지? 나는 몇 시간 더 잠옷 차림으로 내 집 밖에 있어야 했다. 인생 처음 겪은 불이었고, 남편이 출장으로 집을 비운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해가 뜨고 보니 우리 식구 모두 발바닥이 새까맣고, 여러 번 닦아도 콧구멍에서는 검은 재가 묻어 나왔다. 그래도 우리 가족을 포함해 모두가 무사해서 감사했다.
일주일 후 아침 6시, 나는 여느 때처럼 도시락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 인덕션과 후드를 켜고 돈가스를 구웠다. 곧 여느 때 같지 않은 불쾌한 전기 냄새가 났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둘이서 코를 킁킁댔지만 아직 원인을 못 찾았는데 이내 연기까지 피어올랐다. 나는 그제야 싱크 개수대 하부장을 열었다. 벽에 자리 잡은 콘센트 위로 불이 붙어 일렁이고 있었다. 놀란 나는 사슴처럼 펄쩍 뛰었다. 눈앞에 물이 반 정도 담긴 브리타 정수기가 보였다. 그걸 끼얹으려 하니 남편이 말렸다. 골똘히 생각하는 남편의 얼굴을 뒤로하고 아이들이 자고 있는 침대로 뛰어갔다. 두 아들을 깨우고 잡히는 대로 옷을 입혀 현관을 향해 돌아 나왔을 때, 남편이 차분히 말했다.
“불 껐어.”
이런 침착한 남자와 살고 있다니, 결혼 잘했구나.
일주일 만에 겪은 인생 두 번째 불이었다. 남편은 키친타월을 한 다발 뜯어 물에 적셔서 콘센트에 정확히 던졌더니 꺼졌다고 했다. 전기로 불이 났기 때문에 물을 부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남편이 없었으면 큰 불로 번졌을 것이었다. 성급히 물을 부었다가 감전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에도 모두 무사했지만 내 가슴은 쿵쿵댔다. 편도체가 활성화된 것이다. 주변을 살피고 집 안에 소화기가 없음을 확인했다. 집 밖으로 나가니 복도에 소화기가 있었지만 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 칼이나 가위를 다시 가져와 고정 장치를 끊어야만 쓸 수 있는 모양새였다.
잠깐의 작은 불에 주방 모든 가구 집기의 표면에는 진득거리는 재가 내려앉아 찰싹 달라붙었다. 반나절을 닦아내고 설거지했다. 냄새도 남아 창문을 종일 열어두었다. 그날 오후에는 기술자가 와서 불이 났던 하부장의 콘센트를 교체했다.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관리사무소로 갔다. 지난주 지하실에서 왜 불이 났던 것인지, 우리 집에는 왜 불이 난 것인지 물었다. 그리고 아파트 전체적으로 전기 점검을 해야 하는 것 아닌지 물었다. 지난주 사건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고 우리 집 주방에 불이 난 이유는 들었다. 주방 후드와 연결된 콘센트가 무슨 이유에선지 접촉이 느슨해졌고, 그 때문에 전류가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해 스파크가 일어나서 불이 났다는 것이다. 아파트 전 가구 대상으로 전기 안전 점검을 해달라고 하니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원하면 우리 집은 점검해 주겠지만 비용을 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