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마지막 선물

노션 AI와 소설 쓰기

by RAMJI

금요일이다. 남편은 새로운 프로젝트로 요즘 연일 야근 중이다. 오늘 저녁에는 지선이 서윤의 집에서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


퇴근한 서윤은 베란다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거실 바닥에 흩어진 그림책과 장난감들, 준호의 옷가지들을 얼른 정리했다. 어린이집에서 이미 저녁을 먹고 온 준호는 우유 한 잔을 마신 뒤 거실 바닥에 엎드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윤은 그 사이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곧 초인종이 울렸다. 지선이었다.


"준호야 안녕? 이모가 뭐 사 왔는지 볼래?"


"와~ 미니카다~"


준호는 지선이 사 온 장난감을 뜯어보더니 신이 나서 새로운 놀이를 시작했다.


"아유, 이걸 어떻게 사 왔어?"


“하하, 인터넷으로 미리 주문해 뒀지.”


주방에서는 된장찌개가 끓고 있었다. 서윤은 냄비 뚜껑을 열어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았다. 두부와 애호박이 적당히 익었다. 마지막으로 팽이버섯과 대파를 넣은 후 불을 줄였다.


"맛있겠다. 냄새가 좋다." 지선이 주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반찬이 별로 없어. 간단히 차려서 먹자." 서윤이 밥을 그릇에 담으며 대답했다.


상차림은 서윤의 말대로 소박했다. 된장찌개와 고등어구이, 서윤의 친정에서 보내주신 밑반찬 두어 가지가 전부였다. 지선은 서윤이 요리에 관심이 없다가 준호를 위해 최근 하나씩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숟가락을 들며 서윤은 최근 상담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애착 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마음이 복잡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져서 답답하고. 아버지에게서 채우지 못한 부분을 남편에게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 기대를 거둬야 하나 싶어서 혼란스러워. 솔직히 그 기대를 접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 대학원에 가겠다고 했을 때 남편이 단칼에 반대했던 게 너무 서운했는데, 남편을 탓할 게 아니라 내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하는 걸까?“


“서윤아.” 지선이 특유의 다정한 목소리로 서윤의 이름을 불렀다.


"민우 씨가 공감형으로 대화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충분히 서운했을 만해. 나라도 그랬을 거야. 하지만 내 생각에 지금 중요한 건, 민우 씨의 대답이 너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야. 어떤 사람들은 남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해도 크게 타격을 입지 않거든. 그런데 너는... 마치 네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것처럼 받아들인 것 같아. 상담 선생님도 거기서 네가 남편에게 투영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신 것 같아."


"응, 내 자존감이 낮다는 게 바로 이런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 같아."


"민우 씨가 조금 더 다정하고 네 결정을 항상 지지해 주는 사람이었다면 정말 좋았겠지.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민우 씨가 나쁜 사람인 건 아니야. 그는 네 기대를 모르잖아. 설령 알고 충족시켜 주고 싶다 해도 너의 아버지가 아니기에 그 기대를 완전히 채워주긴 어려울 거야. 어쩌면 그 기대는 누구도 온전히 채워줄 수 없는 것일지도 몰라."


서윤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우선은 민우 씨에게 알려주는 게 어떨까, 상담 결과가 이렇다고. 그리고 민우 씨가 조금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너도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 보겠다고 하고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아버지와 화해하는 것?”


“나는 아버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자신이 없어.”


“굳이 아버지에게 가서 과거 일을 끄집어낼 필요는 없어, 서윤아. 너 혼자 하면 돼”


그때 거실에서 준호가 달려와 외쳤다. "심심해. 놀아줘요~"


식사를 마치고 서윤이 설거지하는 동안 지선은 준호와 그림책을 읽었다. 서윤이 과일을 내오자 시계를 본 지선은 집에 가야겠다며 일어섰다.


"더 있다 가도 되는데."


"준호 잠잘 시간 훨씬 지났잖아.” 눈을 찡긋한 후 신발을 신던 지선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뒤돌아보며 말했다.


"참, 서윤아, 세상에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양육환경도 없다는 걸 너도 준호 키우면서 느끼지? 어릴 적 네게 너무나 무섭고 어려웠던 아버지를 용서해 드려. 아버지를 오해했던 너 자신도 용서해 주고.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야."


“……“


"지금 당장 하기에는 막막하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어. 그래도 서윤아, 잘 생각해 봐."


"알았어. 생각해 볼게. 조심히 가."


지선은 떠났다. 서윤은 오늘따라 지선의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평소 지선은 서윤의 이야기에 한없이 공감해 주곤 했는데, 오늘은 마치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자신의 생각을 서둘러 전달하려는 것 같았다.




시댁 방문에 지인 결혼식 참석까지 바쁜 주말을 보낸 후 맞이한 월요일 아침 출근길, 서윤의 휴대폰에 지선의 남편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故 하지선 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황망 중에 있어 직접 연락드리지 못하고 문자로 대신함을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서윤은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가슴에서 뒤통수를 타고 머리까지 혈관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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