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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없이 산다는 것

by RAMJI

오늘 오전 10시 30분경, 평소에 자주 오가는 일차선 도로 삼거리에서 우회전하기 위해 잠시 서 있었다. 오른쪽에서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좌회전하려는지 내 쪽으로 방향을 꺾었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왜 저러지? 생각하는 짧은 순간 그 오토바이는 내 차 오른편 차체와 충돌하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큰 사고는 아니었다. 나에게는 어떤 충격도 없었고, 오토바이 운전자도 바로 일어나 본인의 오토바이를 들어 올렸다. 밖으로 나와 내 차를 살폈다. 큰 손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문짝이 조금 눌렸고, 페인트칠도 벗겨졌다. 차 아래편 검정색 받침대도 떨어져 나갔다. 키가 크고 손발목이 깡마른 오토바이 운전자는 쌍꺼풀 진 큰 눈으로 무엇인가를 호소하듯 말했다. 현지어라서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 남자는 길가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쌌다. 자책하는 것일까.


더 들어보니 그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오토바이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충격으로 한쪽 라이트가 망가져서 전선이 드러났다. 갓이 부서져나간 라이트는 핸들 아래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브랜드명도 제조사도 한눈에 찾아보기 어려운 낡은 오토바이였다.


운전자 인구 중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국에서는 가입하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가나는? AI에게 물어보니 모른다고 한다. 의료보험도 전 국민이 커버받지 못하는데, 자동차보험이라고 보편화되었을까 싶다.


책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불운이 닥치더라도 그로 인해 더 가난해지지 않도록 보험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솔직히 나는 그들이 보험을 들지 않는 이유가 쉽게 이해된다. 혜택은 불확실한데, 비용은 즉각적이고 금액도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시킨다. 농부들은 단일 작물만 재배했다가 흉작으로 낭패를 볼까 봐 여러 작물을 재배한다. 생계도 한 가지(예를 들어 농사)에만 올인하지 않고 장사를 겸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꾸려나간다고 한다.


내 차 수리비는 내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지급한다고 한다. 보험사는 그 비용을 오토바이 운전사에게 받을 것이라고 한다.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그 사람이 오늘의 작은 사고로 재정적으로 곤경에 처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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