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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란 Apr 26. 2021

환승 이직이요? 제가 아는 이직 중에 최고였어요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퇴사를 고할 때는 미소가 생명이다. 평소와 달리 마스크 넘어서도 나의 선함을 느낄 수 있게 눈웃음까지 실컷 지어 보인다.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단둘이 대화를 이어나가는 와중에도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처럼 계속 웃어야 한다.


“그만둔다고?”

그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던 모양이다. 하긴, 반차도 없는 회사에서 연차를 지독하게도 아끼던 얘가 이번 달 들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연차를 내고 있으니까.


“네.. 제가 다른 회사에 가게 돼서요.”


“어머, 잘 됐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어디로 가는지 물어봐도 되나?”


“언론사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에요. IT 회사에서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게 됐습니다.”


지하철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얼마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타길 기대하지만, 대개 10분은 기다려야 버스가 오곤 했다. 어떤 날은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걸어가거나, 택시를 타기도 했다. 체념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환승 타이밍. 이번에는 제대로 잡아탔다.


내가 퇴사를 하는 이유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도 쉬고 싶어서도 아니다. 제멋대로 나의 쓸모를 규정하고 내 앞에서 지껄이던 사람 때문도 아니고, 자유는 없고 책임만 손에 쥐여 주는 구조도 명목이 아니다.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업계와 직무로 커리어를 전환하기 때문이다.


깔끔했다. 완벽한 회사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유난히도 내 전문성을 의심하게 했던 회사에 이별을 고하는 이유가 고작 나의 성장이라니. 내가 지치고 실패하길 바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이 얼마나 우아하고 호쾌한 송별입니까. 


사라졌던 입맛이 돌아왔다. 스트레스로 소화가 잘 안 돼서 식당에서 파는 1인분을 모두 먹으면 게워내야 할 만큼 몸이 아팠었다. 이제는 먹고 싶은 음식이 막 떠오르고 아프기 전만큼 많이 먹지는 못하지만 1인분을 맛있게 비워낸다. 

퇴근 후 아무 걱정 없이 비스킷에 크림치즈를 발라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모습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은 상태가 됐다. 더는 한 줌 나온 채용공고를 보면서 따지고 재보는 일도, 포트폴리오와 경력기술서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앞에 두고 새벽까지 씨름하다 다음 날 출근길 지하철에 오르는 날도 사라졌다. 내 마음과 머리를 온통 지배하고 있던 걱정이 뭉텅이째로 사라졌다. 어색했지만 퇴근 후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넷플릭스를 보다 잠들었다. 마음에는 한 줌의 불편함도 남아있지 않았다.  


3년 10개월. 채 4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항상 다음을 걱정하면서 일했다. 작은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일할 때도, 비교적 규모가 컸던 회사에서 기자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연한 계기로 회사 내에서 직무를 바꿨지만, 일과 사람 그리고 처우에 치이면서 내일의 내 일은 어떤 모습일지 스케치도 그릴 수 없었다.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수능을 다시 봐야 하나? 대학원을 가면 나아질까? 아니다. 다시 태어나야 되나 봐.


불안을 파고들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언론사에서 콘텐츠 기획부터 발행까지 전 과정을 해 본  내 일의 맥락을 제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회사에서 이어나가고 싶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주시해야 할 레이더망의 범위가 좁아지길 원했고, 비좁아진 영역만큼 그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 유익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사실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커리어 전환을 시도한 적 있다. 매달 잡지를 만들면서는 도저히 준비할 여력이 없다고 판단. 일단 퇴사부터 했다. 그리고 실패를 경험했지. 나는 다시 매일이 마감인 언론사로 돌아왔다.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여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큰 회사에 다니지 않아서, 시작을 언론사에서 해서 나는 영원히 이곳의 부조리함을 마음에 품고서 일을 해나가야 할 거라고 짐작했다.


내 인생 그리고 내 커리어는 왜 이렇게 꼬였을까 매일 생각했던 날들이 이어졌다. 부정적인 집착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끝내 나를 미워하는 감정으로 하루를 흘려보낸 기간이 있었다. 더는 못 버티겠다. 그냥 포기해 버리자고 다짐했던 밤을 숱하게 보냈다. 

KBS 가요무대 설운도 여자 여자 여자 무대

그래도 해야지. 다시 기운을 차리고 행동으로 옮기게 해 준 여자들이 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불안 파도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뉴먼이 되었다. 일하는 밀레니얼 여성들의 커뮤니티 ‘빌라선샤인’의 멤버들을 뉴먼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서 이직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해준 여자들을 만났다. 업계, 직무, 연차도 각기 다른 여자들이 있는 곳. 매주 화요일마다 오는 빌라선샤인의 뉴스레터를 읽으며 ‘일하는 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상황이 너무나도 불만족스러워서 흐린눈 하고 싶었지만,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모임에 들어갔고, 노션으로 내가 해온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설명을 덧붙일 때마다  그동안 보잘것없는 일을 해온 건 아니라고 깨닫게 됐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서로의 포트폴리오에 참견했고,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었던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직을 뽀개자는 목표 아래 모인 여자들이 있다. 지원한 회사의 서류심사에서 떨어졌을 때,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다시 마음을 다잡게 해준 여자들이다. 이직을 위해 어떤 작업을 할 건지 매주 목표를 공유하고 매일 체크리스트를 적어서 알렸다. 리스트를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게 되고, 그렇게 느리지만 한 문장씩 내 일의 맥락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내가 다니게 될 회사의 채용공고를 봤지만, 아직 서류 준비가 완벽하지 않아 지원하기 망설여진다는 내 고민을 무력하게 만든 여자들이었다. “여자들만 그렇게 완벽해지려고 애써요. 남자들은 그렇게까지 고민 안 해요. 지금까지 준비한 서류로 그냥 넣어봐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해결책을 누군가 던지면, 다른 사람들이 “그래요. 맞아. 일단 지원해요. 서류는 면접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며 한마디씩 얹었다. 


경력을 디자인해주는 여자의 도움도 받았다. 전문가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내가 직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큰 그림을 그리느라 섬세한 부분은 놓치고 있다는 현실을 알게 됐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내 일의 맥락을 자세히 정리할 수 있었다. 


직장에서 글 마감을 하지 않았던 기간에도 스스로 마감을 만들고 함께 글을 써준 여자들도 있다. 덕분에 글 근육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퇴사라는 선택을 한 여자가 쓴 글 글을 읽고 이직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환승 이직 얘기를 꼭 쓰겠노라고 나불거리던 내 약속을 진심으로 믿어주고 축하해줘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고마운 사람을 떠올리다 보니 수상소감 같은 글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고마운 여자가 많다. 삭막한 회사에서 야망을 다지며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줬던 3층 에디터. 매일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나눴던 나의 오랜 개발자 친구. 가끔씩 만나 내 억울함을 위로해 줬던 잡지 친구와 계모임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환승 이직은 처음인데요. 진짜 기분 째집니다. 퇴사를 통보하던 날 발매된 아이유 앨범의 마지막 곡 가사가 제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어찌나 바라던 결말인지요.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 난 이다음으로 가요.” 


고단했던 전 직장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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