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을 보내는 쉽고 즐거운 방법

색다른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이라면_명성관

by 지소

2000일. 5년 하고도 5개월 20일이며 시간으로 환산하면 48,000시간이다. 그중 20,000시간 정도는 물리적으로 함께 있었다고 추정되는 상대와의 데이트 횟수는 셀 수 없다. 같은 사람과 20,000시간 정도 함께 있으면 대부분 특별한 일은 생기지 않는다. 1년 전까지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까페로 이동해 영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버티다시피 했고, 1년 전부터는 밥을 먹고 집으로 함께 돌아온다. 오늘도 우리가 집이 아닌 곳에서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이 데이트의 전부가 될 것이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 종일 난 기분이 좋다.


음식점은 누군가에게는 식사만을 위한 장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음식점을 ‘찾아’ 가는 데에는 더 많은 요소가 작용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소중한 누군가와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독특하면서도 조화로운 인테리어와 소품, 흐르는 음악과 어우러지는 말소리, 고소하면서 향기로운 냄새, 입안을 자극하며 영혼을 채우는 것 같은 맛, 그리고 눈 앞에 있는 상대의 부드러운 손의 감촉까지 느낄 수 있다. 감각과 기분을 깨우는, 일상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 내게는 좋은 음식점을 찾아가는 일이다.


기념일에는 ‘분위기’라고 부르는 공기와 온도가 사방에 깔려 있어 그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달라지는 감각적인 곳에 가고 싶어진다. 검색을 시작했다. 나름 기념일이니 새로운 곳을 개척하고 싶어져 회사 근처의 가보고 싶은 곳들을 찾아봤다. 얼마 전 친구 솜이 알려줘 나의 새로운 취미가 된 ‘지도 어플에 별 찍기’를 활용해 ‘뉴 플레이스’와 ‘즐겨 찾는 플레이스’를 모두 표시했다. 지도를 보며 거리 순, 호감도 순으로 나만의 후보 군을 정했다. 후보 1순위는 트렌디한 라자냐를 판매하는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인기 있는 가게임을 증명하듯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잠깐 고민했지만 앞의 4팀을 기다리기엔 배가 고팠던 우리는 다른 곳으로 발을 돌렸다. 다른 후보들을 살피다 결국 우리가 선택한 곳은 여러 번의 방문으로 분위기와 맛이 검증된, <명성관>이었다.



<명성관>은 상수에 위치한 작은 ‘차이니즈 다이닝 바’이다. 기존에 있던 ‘명성이발관’ 간판을 그대로 사용해 외관부터 빈티지한 멋이 넘친다. 4인 테이블 하나, 그리고 바 테이블 7-8인석으로 구성된 작은 가게이지만 평일에도 대부분 만석이다. 식사 겸 안주 메뉴로 마라샹궈, 마파두부, 유린기 등을 판매하며 메뉴 구성은 단출하지만 한결같이 맛이 좋다. ‘명성 카시스’, ‘상수동 뮬’과 같은 독특한 칵테일을 포함해 다양한 주류를 판매한다.


(좌) 명성 마파 두부 / (우) 유린기


즐겨먹는 ‘명성 마파두부’와 ‘유린기’, 그리고 나는 ‘차이니즈 하이볼’, 산은 콜라를 주문했다. 다진 고기와, 두부, 그리고 마라로 만든 ‘명성 마파두부’는 최근 나의 소울 푸드다. 밥이 없어 아쉬울 수도 있지만 꽃빵과 곁들여 먹는 마파두부의 맛에 금세 중독된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감칠맛. 많이 맵지 않아 더 좋다. ‘유린기’는 달콤한 간장 소스와 닭다리살로 만든 닭튀김의 아래에 신선한 양상추가 함께 나와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게 튀김을 즐길 수 있다.



산은 내게 이제 기념일을 그만 챙기라고 타박했지만, 조금 더 특별한 기분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들을 하루하루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거창한 일을 하지 않고 값비싼 선물을 주고받지 않아도, 의미 있는 날이라는 기분과 함께 먹는 맛있는 음식과 그날의 분위기는 언제나 나를 조금 더 즐겁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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