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를 이기기 위한 작은 노력_bh Table
하루하루 나를 버티게 했던 일상의 루틴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깨졌다. 일주일에 적게는 2번, 많게는 4번 필라테스로 단련하던 근육들은 다 풀려버렸고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던 피아노 연주도 센터가 문을 닫는 바람에 못 하게 되었다. 새해와 함께 시작했던 독일어 공부는 오프라인 수업이 폐강되면서 동력을 잃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면 휴식과 재정비의 시간이라고 생각할 텐데 나를 갉아먹는 일은 지속되고 채워주는 일들은 멈춰버려서 끔찍한 일상만이 남았다.
요즘의 내게 이 루틴은 너무도 소중했다. ‘해야 하는 일’로 채워졌던 5년을 보내고, 다시 ‘하고 싶은 일’로 차근차근 채워 넣은 일상이었다. 돌아보면 어린 나이였지만 대학 졸업을 앞둔 그때는 ‘해야 할 것 같은 일’이 너무 많았다. ‘해야 할 일’도 아니고, ‘해야 할 것 같은 일’. 이를테면 취업을 해야 할 것 같고, 돈을 벌어서 엄마 아빠의 부담을 덜어줘야 할 것 같고, 용돈도 드려야 할 것 같고.
엄마는 항상 나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른에게는 일어서서 인사해야 한다’, ‘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등 기본적인 예의나 사회 통념에 따른 말부터 ‘자식이 부모에게 먼저(별표) 매일 전화를 걸어야 한다’, ‘어른에게는 싹싹하고 상냥하게, 애교 있게 말해야 한다’는 본인의 희망 사항까지 모조리 ‘must’, 의무의 영역으로 집어넣었다. 유아기부터 들어온 엄마의 말에 ‘세상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관점의 차이’라며 싸워왔지만, 세뇌란 무서워서 결국 내 삶에서 ‘하고 싶은 것’은 언제나 ‘해야 하는 것’에 자리를 내줬다. 애매한 ‘해야 할 것 같음’에 휘둘려 살아온 나는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지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도 못했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나중으로 미룰 뿐이었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물리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진정한 독립이 찾아왔다. 줄어든 통근 시간과 이사한 집 근처의 풍부한 인프라를 이용해 꾸준한 운동을 시작하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 피아노도 다시 칠 수 있었다(좋은 선생님이 내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7살 때부터 즐거웠던 피아노 시간이 선생님이 바뀌면서 싫어져 그만두었고, 스물한 살에 잠깐 발을 들인 작곡 공부도 선생님과 맞지 않아 오래가지 못했다.). 일상에 에너지가 생기니, 미뤄왔던 계획도 보다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내 생각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큰 용기를 얻는 일이었고, 혼자일 땐 할 수 없었던 일도 실행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알맹이들을 쌓고 있었는데,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대체 웬 말인지. 고생해 모은 돈으로 장만한 삐까뻔쩍 새 차를 몰고 구불구불한 샛길로만 가다가 이제 막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레미콘 트럭이 길 한가운데 가로로 멈춰서 있어서 꽝!!! 하고 부딪치면 이런 기분일까.
무기력함과 분노에 휩싸인 채 며칠을 보내다 망가진 기분과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만병통치약인 브런치를 먹기 위해서. 나는 ‘브런치’를 정말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브런치를 먹으러 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브런치를 먹은 날 잠들기 전까지 기분이 좋을 정도다.
브런치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데, 우선 아침식사(Breakfast)와 점심식사(Lunch)를 한번에 해결한다는 의미의 브런치(Brunch)를 먹을 수 있는 시간은 풀타임 직장인인 내게 아주 한정적이다. 기껏해야 주말, 아니면 연차를 쓴 평일 정도. 브런치는 당장 ‘해야 하는 일(출근)’이 없을 때만 먹을 수 있다. 온전히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날, 그런 날이어야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브런치 메뉴들은 가격이 은근히 높게 책정되어 있다. 물먹은 미역이 되어 퇴근할 때도 8,000원을 써서 순댓국을 사 먹을까, 집에 가서 냉동 만두나 쪄 먹을까 고뇌하는데 최소 한 플레이트에 13,000원은 기본인 브런치 메뉴를 먹는 것은 재정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아니면 산산을 잘 꼬셨거나). 햇살이 잘 드는 브런치 까페에 앉아 하릴없이 창 밖을 바라보며 달콤하고 폭신한 스크램블이나 팬케이크를 먹는 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게 바로 인간의 삶이지(왠지 중산층+a가 된 기분이다). 아무도, 그 무엇도 날 재촉하지 않는 풍요로운 시간. 브런치는 내게 ‘여유’다.
브런치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는 메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브런치라는 개념은 미국에서 통용되기 시작해 주로 미국식과 영국식 아침 식사 메뉴가 주를 이룬다. 스크램블, 달걀 프라이, 오믈렛과 같은 달걀 요리는 필수적이고(달걀은 어쩜 어떻게 조리해도 다 맛있을까?) 짭짤한 소시지, 베이컨에 다양한 빵까지! 그야말로 탄단지의 완벽한 조화이며 온 혀의 미뢰를 자극하는 구성이 아닐 수 없다. 달걀물에 푹 적셔 구워내 설탕을 뿌린 프렌치토스트 한입, 베어 물면 탱글탱글한 식감과 함께 육즙이 입 안을 감싸고 소금이 뛰어놀기 시작하는 소시지 한입, 자극에 놀란 입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담백한 오믈렛 한입. 행복한 음식이 가득 눈 앞에 펼쳐져 있는데 어찌 사랑하지 않겠는가.
약속 당일, 오전 치과 예약을 앞둔 산산과 함께 일찍 집에서 나왔다.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약속 장소 근처의 까페에서 생각만 하던 '브런치'의 첫 글을 완성했다.
자양동에 위치한 BH Table은 4-5개의 테이블이 있는 작은 브런치 까페다. 크루아상, 소시지, 샐러드 등이 함께 나오는 브런치 플레이트부터 다양한 파니니, 수제 요거트, 샌드위치 등을 음료와 함께 판매한다. 화이트 톤의 깔끔한 가게 인테리어도 기분 좋은 식사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소다 자매와 나는 ‘프렌치토스트’, ‘에그 베이컨 치즈 파니니’, ‘감바스 바게트 파니니’를 주문했다.
BH Table의 프렌치토스트는 버터가 풍부하게 들어간 페스츄리 식빵에 계란물을 입혀 약불로 오래 조리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제철 과일이 토핑 되어 나온다. 기본에 충실한 부드러운 프렌치토스트에 시원한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신선한 과일의 달콤함. 기분 좋은 당 충전을 선물하는 음식이다.
감바스 바게트 파니니는 마늘과 올리브 오일, 새우를 넣고 조리한 ‘감바스 알 아히요’를 바게트 빵 안에 넣고 치즈를 추가해 파니니처럼 그릴에 구워 나온다. 먹기 좋게 잘라져 있어 손으로 들고 먹으면 간편하다. 감바스 알 아히요와 항상 함께 나오는 바게트를 파니 형태로 합친 형태인데 기존의 브런치 까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메뉴라 재미있었다. 트러플을 첨가한 꿀을 첨가해 먹으면 단짠의 조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탱탱한 새우의 식감이 즐거움을 더해준다.
마지막으로 에그 베이컨 치즈 파니니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재료를 한데 모은 메뉴였다. 치아바타 빵에 달걀 프라이, 베이컨, 루꼴라, 체다치즈, 모차렐라 치즈를 넣어 맛이 없을 수 없다. 부드럽게 늘어나는 치즈의 풍미가 좋고, 달걀로 단백질까지 보충할 수 있는 음식이다. 브런치 메뉴로 손색이 없는 속이 꽉 찬, 든든한 파니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현재의 고민, 새로 시작한 계획, 과거의 추억들까지 다양한 시간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언제나 그렇듯 좋은 사람, 맛있는 음식과 함께하는 이 시간은 기분 좋은 에너지를 준다. 할 일을 끝내고 보내는 소중한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 흔한 재료로 만드는 특별한 식사인 브런치처럼, 내가 달걀과 베이컨, 치즈, 빵을 마음속에 지켜낸다면 나의 시간에 다른 재료가 끼어들더라도 결국은 맛있는 한 그릇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 마음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