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na Aug 30. 2018

#090_벚꽃 그늘에 앉아보렴_이기철

[0829]#090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by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청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1일1시 #100lab

매거진의 이전글 #085_누군가 나에게 물었다_김종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